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져서야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한 화장품 매장의 바구니가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 매장엔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문구를 붙인 바구니가 비치되어 있었다. 고객이 평소 자신의 쇼핑 습관에 따라 바구니를 골라 들면 직원들은 그 바구니를 보고 자세한 안내를 하든지, 방해를 하지 않든지 선택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방송 중 소개한 내용이다.

쇼핑을 할 때 흔히 부닥치는 문제 중 하나가 직원들의 지나친 친절이다. 부담 없이 혼자서 물건을 고르고 싶은데 옆에서 상품설명을 하면 이것이 오히려 구매압박으로 느껴지는 경우다. 일본 교토의 한 택시회사가 ‘사일런스 택시’를 시범운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택시는 기사가 손님에게 불필요한 말을 걸지 않는 게 원칙이다. 기사는 인사할 때, 목적지를 물을 때, 요금을 받을 때 외에는 말을 걸지 않는다.

두 사례 모두 ‘거리두기’ 전략이다.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고객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의미는 다르지만 이 거리두기가 코로나19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2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3-1-1 캠페인’을 제안했다. 3월-첫주-일주일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자는 캠페인이다. 종교활동이나 각종 모임 자제, 행사 취소, 외출 최소화를 실천해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자는 것이다. 거리두기는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의 자가격리 조치 지침에도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여기에는 ‘가족이나 동거인과는 대화를 삼가고 불가피할 경우 얼굴을 맞대지 않고 마스크를 쓴 채 2m 이상 거리를 둔다’고 명시했다. 2m는 기침을 할 때 생기는 비말(침이나 콧물 등의 방울) 확산거리이다.

가족 간 최소 2m 거리 유지는 쉽지 않은 지침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네가지로 나누어 놓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친밀한 거리’는 45.7cm 이내로 엄마와 아이, 연인 사이에 허용되는 거리라고 했다. ‘개인적 거리’는 45.7cm∼1.2m 이내로 친구나 가족 사이의 거리다. 적당히 친해서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거리다. ‘사회적 거리’는 1.2m∼3.7m로 예의를 갖추어 대화하는 사무적인 거리이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거리’는 3.7m 이상으로 강의나 연설을 할 때 유지되는 거리이다.

얼마 전부터 급작스럽게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개인 사이에 거리두기가 확연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나 자가격리 지침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접촉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친밀한 거리’ 뿐 아니라 ‘개인적 거리’마저 벗어난 2m 접근금지를 권고할 정도 아닌가.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오히려 가족 간에도 너무 밀접한 거리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는 직장에서도, 친구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맞은 공간적·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가족이라도 예외는 없다. 적당한 거리는 일종의 보호장치와 같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2m는 어떻게 보면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때까지는 ‘친밀한 거리’만 존재했다. 아이들의 일기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본다든지, 부부의 휴대폰을 열어본다든지 하면서 개인적인 공간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의 거리를 서로에게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때로는 지나친 이기적인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대구지역 코로나19 환자의 타시도 이송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속 증가로 대구지역 병상이 모자라는 급박한 상황을 맞은 대구시장이 타 시도 지자체에 환자 수용 도움을 청했다. 각 지자체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확실한 건 현재 상황에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마저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의 대구지역 중증환자 수용 결정이나 광주시의 경증환자 수용 결정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대구와 양 도시간의 공간적인 거리보다 훨씬 더 심리적 거리는 줄어들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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