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스스로 고발할 참인가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집권여당은 양당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노래 불렀다.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다당제가 핵심이다. 그 진짜 의도는 영구집권에 있었겠지만 밖으로 내건 명분만은 그랬다. 군소정당의 국회 진출을 활성화하고 선거에서 사표를 줄이는 연동형비례제를 그 절대적 도구로 상정했다. 연동형비례제를 채택하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듯이 정치권의 파국을 각오하면서까지 무리를 해가며 거세게 밀어붙였다. 제1야당 대표의 삭발과 목숨을 건 단식에도 미동하지 않았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요지부동 야당과 협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1야당이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결국 연동형비례제는 날치기 통과되었다. 선거법은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간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삼분의 일이 넘는 의석을 가진 거대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변칙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상식을 뭉갤 만큼 연동형비례제 도입이 중차대하고 화급했던 모양이다.

연동형비례제를 무슨 절대반지 모시듯 했던 여당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제도를 무력화시킬 책동을 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또는 자발적 창당 움직임이 그것이다. 진보성향 위성정당 창당을 주도해온 ’주권자전국회의‘가 여당 등에 창당 제안서를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에선 예측치 못할 일인 듯 딴전을 떨고 있으나 여권 핵심인사가 먼저 타진해 와서 본격화되었다는 ’주권자전국회의‘ 관계자의 말이 그들의 민낯을 폭로하고 있다.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위성정당 창당엔 선뜻 나설 명분이 없으나 자발적 창당을 막기 어렵다는 변명은 자가당착의 끝판왕이다. 위성정당이든 자발적 창당이든 편법이자 꼼수라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느 쪽이든 연동형비례제 원래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죽기 살기로 가로막는 제1야당을 따돌리고 정치개혁 명분을 걸고 강행한 선거법을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이를 다시 불구로 만들 방안을 논의한다는 사실에 경악할 뿐이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연동형비례제를 통과시키지 말아달라고 야당이 사정했을 때 여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강행했는지 궁금하다. 목숨 걸고 연동형비례제를 통과시킨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여야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나눠먹는다면 정치개혁을 했다는 명분마저 사라진다. 선거 끝나면 이합집산 재편될 게 뻔하다. 양대 진영으로 편이 갈릴 것이다. 위성정당이 생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합종연횡, 보수와 진보로 진영이 나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난 선거법하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 음양철학이 공연히 나온 게 아니다. 연동형비례제를 패스트트랙에 태워 나라를 어지럽힌 책임을 여당에게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관위가 불법적 미래한국당 창당을 승인한 건 헌법적 책무를 져버린 것’이라며 미래한국당을 '위법적인 꼼수 정당'으로 고발까지 했던 여당이다. 그랬던 여당이 갑자기 기존 입장을 확 바꾸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또는 ‘자발적 시민단체 창당’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현 상황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스스로 자기 정당을 불법으로 고발해야 할 상황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지금 여당을 진퇴양난으로 몰고 있는 선거법에 대해 공수처 때문이었다는 말이 여권 심층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여당이 군소정당들과 공수처법을 선거법과 교환했다는 자백이다. 선거법 개정이 공수처 설치를 위해 군소정당을 유인하기위한 미끼였다는 야당의 날선 비판이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다. 이는 입법거래 범죄다. 사법거래라는 죄목으로 전 대법원장을 위시한 판사들마저 법정에 서고 구속되는 판국에 입법거래를 자행하고도 뻔뻔스럽게 금배지를 달고 큰소리치는 모습은 참으로 가증스럽다.

위성정당 창당이든 자발적 창당이든 대통령 탄핵을 막을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말은 그들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탄핵받을 짓을 했다는 고백이다. 정치를 잘해서 탄핵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 국회 의석을 다수 확보하여 탄핵을 막겠다는 생각은 반민주적이다. 탄핵할 일이 있으면 국회가 못해도 주권자인 국민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지난번 탄핵도 야권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가져서 된 게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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