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스런 일상에도 창틀에 스며드는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잠시 모든걸 잊고 재미있는 한 권의 소설에 빠져드는 것도 기분 좋은 힐링이다. 이번 주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 사회상을 반영한 여류 소설가들의 최신 작품을 소개한다.



▲ 소설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
▲ 소설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김옥숙 지음/ 새움/380쪽/1만4천 원

어릴 때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대학을 그만둬야 했던 마순영 씨. 가난하면 꿈조차 좌절되는 현실에 절망했던 그녀는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바로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

속물이라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대대손손 ‘흙수저’인 부모로서, 아들이 명문대에 가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니겠는가? 그녀는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흙수저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수단은 공부밖에 없다고 믿었다.

금수저는 금수저대로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하늘 높이 치솟으려는 염원을 담아 종교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은 스카이교, 바로 서울대교이다. 대한민국 공식·비공식 종교에 등장하지 않지만, 서울대교라는 이상한 종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편이다. 그리고 마순영 씨는 서울대교의 광신도를 자처한다.

소설은 마순영 씨가 아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해운대구에서, 돈이 없어 학원을 한 군데도 못 보낸 아들은 전교 1등을 하고, 모의고사 만점을 받기도 한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24시간을 감시·관리하다시피 했던 마순영 씨는 자신이 아들에게 최적화된 입시 전문가라고 굳게 믿으며 ‘헬리콥터 맘’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실제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많이 녹아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은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다. 못나고 나쁜 엄마 이력서를 부끄럽지만 그대로 드러냈다. 욕심 많고 어리석은 헬리콥터 맘의 이력서, 길고 긴 엄마의 반성문이다”라고 고백한다. 입시전쟁 한가운데 뛰어들어 바라본 아이들과 학부모의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무한 경쟁 사회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짓밟고 올라서라고,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제 살길만 찾으라고, 느릿느릿 걷다가 굶어 죽고 싶냐고, 불안을 키우고 욕망을 부풀린다. 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욕심과 불안감이란 감옥에서 못 나오는 엄마들은 아이를 공부의 노예로 만들었다. 내 자식은 남들보다 앞서나가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헬리콥터 맘이란 괴물 엄마와 공부 기계가 된 괴물 아이들을 만들어냈다.



▲ 소설 아직 멀었다는 말
▲ 소설 아직 멀었다는 말
▲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지음/문학동네/284쪽/1만3천500원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하나 라는 평에 걸맞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한국문학의 품격과 깊이를 더하는 권여선의 여섯 번 째 소설집이다.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문득 소희는 새처럼 목을 빼고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듯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할머니가 아흐 어하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한다. 그건 아직 멀었다 소희야, 하는 말 같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희는 일하는 매장에서 박스를 들어올리다 박스 아래에 튀어나와 있던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긴다. 하지만 대출금과 옥탑방 월세 등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갚아야 할 빚과 모아야 할 돈을 백 원 단위까지 끊임없이 계산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 그런 소희에게 유일한 사치는 아침 통근버스를 탈 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다.

N도 소희와 사정이 비슷하다. 기간제교사로 두 달간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N은 그 세계에서 은근히 비정규를 무시하는 교사들의 속내를 예민하게 간파한다. 그는 “치사하고 악질적인 쪼개기 계약과 계약 연장 꼼수”에 넌더리가 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깨끗이 그만둘 생각을 한다. 하지만 N은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소희가 일반 짬뽕보다 오백원 더 비싸다는 이유로 매운 짬뽕을 포기하는 것처럼, N은 계약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받게 되는 한 달 치 월급과 그 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가늠 한다.

이처럼 이번 소설집은 촘촘한 묘사와 생생한 캐릭터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에두르지 않고 짚어나가는 권여선만의 특기가 여전한 가운데, 한편으로는 ‘안녕 주정뱅이’ 이후 권여선 소설의 새로운 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은 그간의 한국문학에서 드물었던 레즈비언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지만, 레즈비언 커플을 향한 외부의 압력을 묘사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들 사이에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감정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 소설 유니폼
▲ 소설 유니폼
▲유니폼/박영희 지음/도서출판 북인/220쪽/1만3천 원

박영희 작가가 주목한 이번 장편소설의 주제는 ‘유니폼’이다. 정식직원과 계약직원의 유니폼이 다른 회사, 늘 푸대접받는 계약직원의 유니폼을 벗고 정식직원 유니폼을 입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견뎌야 하는 여자 주인공 정미정의 눈물겨운 사투가 소설 전편에 펼쳐진다.

이를 위해 박영희 작가가 소재로 끌어들인 것은 1960년대에 일어난 미원과 미풍의 조미료전쟁의 후속편 격인 1980년대 대기업 ‘다시다’와 중소기업 ‘맛나’의 천연 조미료전쟁이다. 그 천연 조미료전쟁의 한복판에서 ‘맛나’의 계약직원으로 근무했던 주인공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박영희 작가는 유니폼은 ‘내가 누구인지 깨우쳐주는 충고’였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면 괜찮겠지 하며 버틴 희망은 부모와 자식의 위치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수습은 유전된다’는 말은 그냥 무심결에 나온 말이 아니었고 작가의 속에서 오래된 젓갈마냥 곰삭아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수습시절이 KTX 속도처럼 빠르게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그 힘센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애태웠던가. 계약직의 기억들이 30년이 훨씬 넘게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토로한다.

박영희 작가는 자신이 취업했던 그 시절이나 자녀들이 취업할 지금이나 사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박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1990년대 생들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 참여한 세대이기도 하다. IMF시절 금모으기 운동에 자신의 돌반지도 기꺼이 바친 아이들이니깐 태어나자마자 나라를 위해 반강제(엄마들에 의해)로 힘을 실어준 세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엄마들은 자신들의 결혼예물도 보탠 대단한 엄마들이기도 했다.

1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밥벌이하는 아이와 대기업에 취업을 한 녀석은 고작 두세 명 정도다. 나머지는 여러 항목에 해당하는 취준생들이다. 그래서 씁쓸했다. 그 씁쓸함이 내 아이들의 시대인 1990년대 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장편소설 ‘유니폼’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하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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