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선물

발행일 2020-03-05 09:23: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선물

자고 일어나 TV를 켜기 무섭다. 밤사이 또 얼마나 새로운 확진자들이 생겼는지, 사망자는 얼마나 발생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꼼짝 말고 집안에 있으란다. 학교도 개학을 연기하고 자주 가던 대폿집도 목욕탕도 문을 닫았다. 그러니 방 안에 박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정작 자영업자들은 월세를 낼 수도 없을 지경이라고 걱정이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 것이며 사람 만나는 것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언론도 동네 스피커도 당부한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이 누굴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겠나. 언제나 경기가 나쁘다고 하더니 이제 제대로 핑계를 만났다고 해야 하나.

TV에서 전문가들이 나와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을 들어볼라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코도 맹맹한 것 같고 기침이 나면서 나도 코로나19에 감염이라도 된 듯 속까지 울렁거린다. 혹시 TV 화면으로도 감염이 되는 건 아닐까. 어디가야 안전하고 어떻게 해야 안전할까. 메디시티 대구라고 하지 않나. 최고 수준의 의료 인력과 첨단 의료 기술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세계 각국의 고객들을 불러 장사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고 자랑하는 도시가 대구다. 그런데 역병으로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승객을 싣고 베트남으로 가던 국적 항공기가 회항했다. 하노이 공항이 착륙을 허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의 국력이, 우리가 우방이라며 속으로 만만히 보았던 베트남으로부터 이런 무시를 당했다. 그 전에 이스라엘에 갔던 수백 명의 우리 관광객이 쫓겨 나왔다. 이스라엘에 입국은 했으나 제대로 관광도 하지 못하고 호텔에 감금됐다 귀국했고 또 일부는 공항에 묶여 있다 되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나라가 90개국이 넘는다. 이럴 때 입국금지는 ‘방역 능력이 없는 나라의 투박한 조치’라는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국회 답변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코로나19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의 국력이자 외교력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대구는 아주 유령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행인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길을 이어가는 것은 그것이 마스크 구매 행렬이란 것을 느낌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돼 버렸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서울의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느냐고. 대구가 코로나 19 사태로 연일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으니 대구 사람 안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뿐 아니다. 부산서도 인천서도 심지어 미국서도 일본서도 안부 전화가 온다. 내 안위가 걱정되는 것인지, 대구 실태가 궁금한 것인지.

심지어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이 헤어졌던 집안 동생도 인류적 재앙 앞에서는 혈육이 당겼던 모양이다. ‘별 일 없지요?’ 하고 물어올 때는 콧등이 다 시큰거렸다. 코로나19 덕분에 네 전화를 다 받아보는구나. ‘그래, 너도 별 일 없제?’ 하고 물어보면서 수화기 너머 머쓱하게 웃는 얼굴을 상상한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잊었던 친구, 멀어졌던 혈육을 다시 이어주는 고마운 선물을 가져다 준 것이다.

또 있다. 전국에서 대구를 돕자고 달려오는 의사들, 간호사들,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성금과 성품 성원이 대구 의료계에 답지하고 있다. SNS에는 대구를 응원하는 헤시테그와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는 일어설 것이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 난세에 어김없이 영웅이 등장했고 문제를 해결해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지혜를 모은다면 이 세기의 재앙은 우리에게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물론 권력자에게는 이번 재난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더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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