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참새

이숙경

느닷없이 순례하듯 날아온 두 마리 새

못 박힌 예수의 핏자국을 짚어보려

새가슴 조바심치며 종종걸음 걷고 있네

귀밝이로 마시는 새벽 종소리 아련해지면

밤마다 붉은 십자가 두려웠던 어린 시절

지은 죄 헤아리다가 씻은 듯 맞이한 하루

참새보다 작은 가슴 팔짱 속에 감추고

매만지면 어설픈 믿음 수없이 무너졌지만

경적을 쏘아붙이는 이 길에도 보이시네

-시조집 『까막딱따구리』(고요아침, 2020)

.................................................................................................................

이숙경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파두』『흰 비탈』(우리시대 현대시조선 28, 고요아침, 2016) 과 『까막딱따구리』등이 있다.

‘십자가, 참새’는 이채로운 시편이다. 못 박힌 예수의 핏자국이나 새벽 종소리, 붉은 십자가, 순례, 죄, 믿음과 같은 종교적인 시어들이 등장하여 신성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십자가에 참새 두 마리가 앉아 있는 정경을 보다가 떠올린 생각이 한 편의 시로 완성된 것이다. 참새는 느닷없이 순례하듯 날아왔는데 화자는 별안간 못 박힌 예수의 핏자국을 짚어보려고 새가슴 조바심치며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성에 다가가려는 간절한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귀밝이로 마시는 새벽 종소리 아련해지면 밤마다 붉은 십자가 두려웠던 어린 시절이 회상되면서 지은 죄를 헤아리다가 씻은 듯 맞이한 하루를 기억하고 있다. 화자는 참새보다 작은 가슴을 팔짱 속에 감추고 매만질 때 어설픈 믿음이 수없이 무너졌던 것을 떠올린다. 평론가 유성호는 경적을 쏘아붙이는 길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마치 존재 그 자체의 귀엣말을 듣듯이, 어둠 속의 길을 은은하게 바라보듯이, 십자가에 어른거리는 어설프지만 소중한 믿음의 시간을 고이 어루만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삶의 진정성이 오롯이 부각되고 있는 해석이다.

시인은 근원적인 존재의 현현을 바라보고 노래한다. 회복해야 할 서정시의 기율이 사물의 배후에 있는 존재의 본질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것을 타자와 소통하면서 성찰하는 데 있음을 자각하고 사물의 외관을 재현하는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심층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창의적 국면을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동백꽃 반지’라는 단시조에서 ‘시들지도 않았는디 똑 떨어징께 맴 아퍼 손구락 새 한 송이 꽃 피웠네, 울 엄니 이쁘다 오지게 이뻐 동박새 또 오것다’라고 노래한다. 표준말이 아닌 호남 사투리를 원용하여 새로운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문어체가 아닌 입말이 주는 느낌은 더욱 다정다감하게 들린다. 이러한 친숙성은 구어체이기 때문에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어린 시절 항용 쓰던 말을 다시 시에서 복원하여 활용하는 일은 원초적 정감을 불러내는 일이다. 더구나 어머니의 말이 아닌가. 떨어진 동백꽃으로 반지를 만든 일을 통해 삶의 추동력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이렇듯 시는 먼 데 있지 아니 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풍광이 시와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눈을 기를 일이다.

시조를 쓰는 그 누구이든지 심원한 통찰과 사유가 착색된 완미한 정형미학의 정수를 꿈꾼다. 그 길은 요원하지만 그렇다고 쉬이 포기할 수 없다. 끝까지 가는 이에게 빛 부신 시의 길은 열릴 것이다. ‘십자가, 참새’가 그것을 잘 일러주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