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만은 않은 원화 약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주초부터 달러당 원화 환율이 1,200원을 상회하는 등 원화 약세가 좀체 진정될 기미가 없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세계적 유행 단계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나 금 같은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고, 이 흐름에서 낙오하여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국내에서도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으면 이러한 현상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고, 원화 약세도 더 가속화될 수 있다. 미국 금리 인하와 주요국 추가 유동성 공급 결정 등 통화정책만 보면 상대적으로 덜 완화적인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는 약세가 아니라 강세로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실상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이를 억누르고 있고 이 때문에 기정사실로 알려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마저 실행된다면 원화 약세는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화 환율이 지난 몇 차례의 경제위기 때처럼 일순간 급등해 진짜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걱정은 덜 해도 될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경제가 유달리 경쟁력이 약하거나, 갑작스럽게 버블이 꺼진다거나, 달러화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재정이 어려워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현재의 원화 약세를 용인하거나,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아마도 이런 기대에는 IMF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과 같은 경제위기를 통해 원화 약세가 수출 증가와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해 고용과 소비 확대를 불러와 우리 경제를 위기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원화 약세가 과거만큼은 아니겠지만, 경기 회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염병 확산 우려로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세계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축소되는 그야말로 근래 우리가 경험한 바 없는 위기가 바로 코로나19다. 그래서 지금은 오일쇼크 때처럼 비용 충격이나, 특정 국가의 버블붕괴나 글로벌 유동성 부족 등으로 발생한 위기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논리에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격한 원화 약세로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개선된다 한들 일부 혁신적인 상품을 제외하면 지금보다 더 사 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기업 실적이나 고용은 물론 소비에도 기대만큼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에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상대국인 중국 실정만 봐도 그렇다. 통상,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p 정도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최소 1억5천 달러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중국이 이번 사태의 진원지가 되어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고, 내수 심리도 악화되어 경제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전망이다. 더군다나 미국과의 무역협상 결과 제조업에서만 올해 300억 달러 넘게 미국으로부터 사들이기로 해 이 또한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의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 여기에 더해 유엔은 세계 중간재 교역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의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한국은 최대 38억 달러 정도의 수출 감소가 우려된다는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아마도 이 정도 피해를 극복하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빠르게 원화 약세가 진행되어 수출 물량이 급증해야 가능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의도적으로 원화 약세를 유도하거나 방치하면, 우리 경제에 대한 대내외 불안 심리를 자극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수입 기업은 비용 상승으로, 국민 개개인은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을 것이 뻔해 그다지 반길만한 일이 못 된다.

최근의 가파른 원화 약세 현상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와 정책 당국의 현명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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