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은 안 된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총선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수많은 신생 미니 정당만 낳아놓고 사실상 불구가 됐다. 사생결단으로 쟁취한 전리품을 스스로 내팽개친 여당의 심오한 뜻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듯하다. 현재 등록된 정당이 벌써 마흔 두 개나 되고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하니 정당 수로선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 급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의 후유증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자면 정당이 국민 수만큼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고 대의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와 거의 동격이다. 의회민주주의는 정당이 그 중간자 역할을 한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거르고 숙성시켜 의회로 가져가는 촉매역할을 하는 셈이다. 거친 여론을 정연하게 다듬고 세련되게 가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일을 하는 공장이 정당이다. 각 공장 소속 의원들이 현장의 생생한 데이터를 물고 오면 이들을 유용한 정보로 가공하여 의회에 제품을 내놓고 다른 공장 제품과 경쟁하고 협상한다. 정치가 정당 간 경쟁으로 대치되는 까닭이다. 하여 선량을 선택할 때 어떤 정당 소속인지 꼼꼼히 살펴서 투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의 자질보다 정당 브랜드가 오히려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화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정당이 민주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런 이유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공천은 결정적이다.

현재 주요 정당의 공천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양상이다. 공천 소식이 코로나19를 밀어내고 메인타이틀을 장식하고 있다. 어느 당 할 것 없이 공천 잡음이 요란하다. 선거 때마다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공천 받은 자보다 탈락한 후보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물론 착오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종합적으로 심사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지난하다. 염라대왕도 심판하기 힘든 일을 인간이 단시간에 한정된 자료를 토대로 완벽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여론과 상대당 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조건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통분모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선책은 없고 차선책만 있다. 공천 잡음은 필연적이다. 사람의 평가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평가의 다의성을 인정한다면 공천 결과에 일단 승복하는 것이 맞는다. 불복하더라도 당내에서 다퉈야 한다. 잘못이 명백하다면 재심에서 소명할 수 있다. 재심을 단지 탈당 명분 쌓기 용으로 여겨서는 실효성이 없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동향이 심상찮다. 무소속 출마로 잘못된 공천을 직접 심판받고, 당선되면 다시 입당하겠다고 한다. 무소속이 진정한 무소속이 아니고 특정 정당을 표방한 가짜 무소속이다. 이런 행태는 정당하지 않다. 어떤 정당의 이념에 동조하여 공천 신청을 했다면 그 정당의 공식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 정도다. 공천 탈락을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유권자의 동정을 받겠다는 생각은 후진적이고 이기적이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의원이 되고자 하는 꿍심을 보여주는 행태다. 입신양명이란 숨은 속내를 무의식중에 드러내놓은 셈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추태만 부각될 뿐이다. 그런 사람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사익이다. 사익과 배치되면 국익을 헌신짝 버리듯 내칠 건 뻔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습성이 어디 가랴. 공천에 여사로 불복하는 행태는 부적격자임을 선언하는 꼴이다.

이번 선거는 양 진영의 전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사회주의의 대결이다. 사적 이해관계로 고춧가루를 뿌리는 일은 금기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 대의를 저버려선 안 된다. 무소속 후보가 선거판을 교란하여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유권자도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무소속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판단하여 이데올로기란 큰 줄기를 놓쳐선 안 된다. 소속 없는 후보자에게 절대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이라기 보단 체제의 선택을 묻는 국민투표다. 대의와 원칙이 없는 후보자에겐 표를 주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소속이라는 유혹을 견뎌내야 한다. 억울해도 이번만은 참아야 한다. 인내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에 참는 것이다. 이슈를 단순화해야 선호가 명확히 드러난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사회주의, 오직 두 선택지만 유권자 앞에 내놓아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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