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정민 한양대 교수의 책을 즐겨 읽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한 단원씩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죽비소리’나 ‘마음을 비우는 지혜’ 같은 책들이다. 최근에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정민, 보림)를 읽었다.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한시 입문서다. 풍부한 예화를 곁들여 재미있게 한시를 풀어쓴 글들을 실었다.

그 중의 한 예다.

중국 고대의 유명한 사상가인 노자(老子)의 스승은 상용(商容)이다. 스승이 늙고 병들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노자는 급히 찾아가 임종을 지켰다. 그러면서 노자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스승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가르쳐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그러자 스승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입속을 보거라. 내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선생님!”

“내 이빨은 있느냐?” 상용은 나이가 많아 이빨이 다 빠지고 없었다.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

그러자 스승은 뜬금없이 곧바로 제자에게 말했다. “알겠느냐?”

노자도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겠습니다. 이빨처럼 딱딱하고 강한 것은 먼저 없어지고, 혀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스승은 돌아누웠다. “천하의 일을 다 말하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 속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이 숨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정민 교수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의미도 이것 아닐까. 강하고 단단한 이빨은 먼저 없어졌다. 반면 혀는 부드럽고 약한데도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강한 자는 망하기 쉽고 유연한 자는 오래 존속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치망설존(齒亡舌存: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있다)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노자는 부드러움을 강조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요즘 노자의 스승이 말하는 ‘이빨’들이 너무 많아서다. 부득부득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기어이 관철시켜야만 그만 둔다. 잠시 멈추거나 한발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좌우 돌아보는 법도 없이 오직 직진뿐이다. 남의 말이나 충고는 곧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빨처럼 강하기는 하지만 곧 다 빠지고 없어질 운명인 줄도 모른 채.

다양한 주의주장이 쏟아지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은 얼핏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하나 걸러서 보기도 쉽지 않은 SNS(사회관계망) 상의 수많은 주장들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상일 뿐이다. 그렇게 입으로는 다양성을 외치는 사람들조차도 결국은 좌우 진영논리로만 사회를 바라본다. 나의 주장을, 나의 생각을 강하게 표출하기만 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표로 연결시키기가 수월해서다. 좌우로 가르고, 흑백으로 가르고, 니편내편 갈라 강하게 상대를 압박하기만 한다. 조금이라도 물러섬이 없는 강 대 강뿐이다.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볕이다. 일찍이 노자는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라며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리 자기가 정해둔 직선주로를 앞뒤좌우 보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어린이를 위한 한시입문서를 읽어보라 권하는 것이다. 웬만해선 잘 알아듣지를 못하니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쉽게 이야기해주는 책이 딱 맞다.

이 책에서 노자의 스승 상용이 혀와 이빨을 차례로 보여 준 이유를 설명해준다. 부드럽게 남을 감싸고, 약한 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랫동안 복을 받고 잘 살 수가 있고, 제 힘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만다는 뜻이었다.

뒤로 한발 물러서서 유연하게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힘이라는 것을…. 그것이 현재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여유를 가지고 노자와 스승의 선문답(禪問答)같은 대화를 되새겨 볼 일이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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