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권리와 유권자의 권리

연산군은 능상(凌上)을 참을 수 없었다. 절대군주에게 도전하고 그 권위를 능멸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겨지는 상대가 있다면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삼사의 언관은 물론, 그가 선왕의 신하이든 내전 대비이든. 자신이 왕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국민이 왕인 시대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그렇게 명문화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아직도 그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이 있어 하는 말이다.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지금 정당들의 후보 공천을 보면 그렇다.

통합당의 대구·경북 지역 공천을 보면 확연하다. 그들은 중도층으로 지지자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새 인물로 바꿨다며 낙하산 공천을 물타기 한다.

이건 유권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정당에 양도한 탓이다. 그것이 작금의 막장 공천 사태를 불러왔다고 단언한다. 정당이 누구를 추천하든 그들의 권리다. 그러나 국회가 정치판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이다. 유권자가 그런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 결과가 이번 공천이다.

통합당의 대구·경북 공천은 선택지를 늘려 준 것이다. 지역민의 신망을 얻고 민심을 대변할 후보를 선택했다면 무소속후보가 무더기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희망에 따라 선택할 것이다. 그 선택 범위가 여당이나 또는 야당이냐 하는 단순한 게임의 룰을 지키면 될 터였다. 그런데 통합당은 무더기 무소속 출마를 부르는 공천을 해버렸다.

총선거는 전 국민이 치르는 객관식 시험이다. 정당이야 정권 쟁취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유권자는 자신을 대변할 최선의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유권자의 권리를 착각하고 정당의 후보 추천권을 넘보기나 간섭할 이유가 없다. 추천되거나 입후보한 후보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그것을 착각했다. 정당이 추천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유권자가 정당의 추천권을 지나치게 존중하고 그 선택지에서 답을 찾는 어리석음을 관행처럼 이어온 것이다. 주객전도의 현장이다.

지난 4년을 보라. 그들은 연봉 1억 원이 넘는 고액 봉급자들이었다. 그들은 늘 국민을 핑계로 인질로 국정을 마비시켰다. 때로는 동물국회로, 또 때로는 식물국회로 그들만의 리그를 벌였다. 그들이 입만 열면 하는 말은 언제나 국민을 인질로 삼았다. 그런데 한 꺼풀 벗겨보면 아니었다.

그들의 정파를 위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세비를 인상하고 자파의 세를 불리기 위해 육탄전과 고발전을 벌였다. 입법기관인 그들이 사법부에 판단을 맡는 추태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마다 국민의 이익을 빙자했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국민을 팔아가면서 대치하고 대립하고 대결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방해하거나 가로 막고 있는, 그래서 20대 국회의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놓인 민생 관련 법안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4년 전 출마할 때 내걸었던 약속은 얼마나 지켜냈나. 지난 4년 동안 그들이 얼마나 국민을 실망시키고 심지어 분노하게 만들었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들은 그들의 태업을 비난했고 그들의 무능함을 책망하며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내놓은 공천결과는 또 한 번 국민들은 실망시키고 있다. 텃밭인 대구·경북의 물갈이를 통한 변화로 전체 국민들을 사로잡으려는 공천이라고 포장한다. 무더기 무소속 출마는 누가 되더라도 결국은 우리편이라는 계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그 공천을 두고 사천이다 막장이다 열 올릴 일이 아니다. 단지 그 후보가 우리를 대변해 줄 후보인지, 개인의 사욕을 차릴 후보인지, 특정 계파를 대변할 허수아비인지 냉철히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들이 내놓은 카드에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참신함이 있는가를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해진 선택지 중에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다. 그렇게 해서 국민을 깔보는 그 버릇을 고쳐가야 한다. 지금은 국민이 왕인 시대다.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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