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21대 총선이 20여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선거 분위기가 다소 묻힌 듯 보이지만 각 정당의 공천 과정과 후유증, 비례연합정당 창당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국민을 대신해 대표자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표현인지 모른다. 정당의 득표율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다수 득표자 당선에 따른 사표 방지와 소수 정당의 최소 의석수 확보라는 취지에서 비례대표제 역시 소수자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도입된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설치 문제로 국회가 공전되고 군소정당의 이합집산은 새로운 선거 구도를 만들었다. 야당의 비례정당 창당을 두고 ‘묘수냐, 꼼수냐’의 논란으로 번지더니 어느새 집권당인 여당을 중심으로 한 비례 연합정당이 급조되기에 이르렀다. 꼼수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자 소수 정당의 몫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석수를 독식하려는 미래통합당에 대한 정당한 견제라고 소리 높인다.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야당의 과반의석 차지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할 것이며 국정의 불안과 정책의 연속성이 무너질 것이라며 진보세력 정당들은 항변하고 있다. 타당하고 정당한 논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들고 나온 군소정당에게 현 집권여당은 공수처 설치라는 법안으로 대응해 동시 통과시켰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반대와 국회 내 투표거부로 철저히 야당은 배제된 ‘선과 악’이라는 두 축으로 형성되는 모양새였다. 이에 따라 야당은 비례정당을 창당하게 되고 연일 집권여당과 군소정당은 ‘꼼수’라며 설전을 이어가기에 이른다. 과연 꼼수라고 비난만 할 수 있는 일인가? 수많은 비례대표제의 경우의 수가 있기에 완벽한 선거제도는 애초부터 쉽지 않았음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이러한 꼼수는 예측할 수 없었는지 스스로 반성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야당의 비례정당을 승인한 선관위에 대한 공격에 앞서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여당의 성급한 타협이 허점을 노출한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비례연합정당의 창당을 발표하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마디가 이채롭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도둑질로 의석을 확보’하려는 미래통합당의 ‘반칙과 편법을 응징’하고 ‘유권자 민심 그대로’ 선거에 승리하겠다’ 고 언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표의 말 속에 자가당착이 고스란히 배어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제도 속에서 허용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 도둑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더불어 국민의 의사를 나타내는 득표율에 따른 의석확보는 비례대표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꼼수라고 공격하던 야당의 비례정당에 맞대응해 비례연합정당을 창당한 것은 동일한 반칙이며 편법이자 또 다른 꼼수일 뿐이다. 유권자의 민심이 과연 여론조사만으로 읽어낼 수 있는지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흔히 우리는 악마를 대표하는 말로 사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탄은 곧 루시퍼를 부르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루시퍼가 악마가 되기 이전에 천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며, 신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였다는 점이다. 자만한 그는 많은 천사를 이끌고 신의 자리를 뺏으려고 했기 때문에, 천국에서 추방당해 지옥으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성선설과 성악설로 대변되는 인간 본성은 곧 루시퍼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만들어 가는 정치제도는 이러한 이중성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절대선인 정치제도는 분명 없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기에 상대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소수자 보호라는 원칙아래 소수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수자에 대한 소수의 자유로운 비판은 보장되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상의 비례대표제의 의석배분 또한 이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절대 다수자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 절대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민주제도의 타락한 정체에 대해 ‘다수의 폭민에 의한 정치’로 규정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 빈민의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다수결의 원칙과 절대적 의석수를 확보하는 것만이 정당의 최대 목표로 두는 우리네 정치현실을 경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자만과 오만으로 신에 대항한 루시퍼의 추락처럼 우리의 선거제도가 또 다른 모습의 악마를 만들어 낼까 두려운 이유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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