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3)

청도 장연사지

들녘에는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움트고 있지만 지난겨울부터 번진 괴질로 회색빛 하늘까지 침울해 보인다. 어디선가 마음 편안해질 곳을 찾다가 시간의 흔적만 남은 폐사지로 향한다.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도 위안을 주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텅 빈 옛 절터에 서면 헛된 욕심을 하나씩 허물 수 있고 그럴수록 마음은 편안해질 것이다.

대구에서 가까운 폐사지 중에는 청도군 매전면에 장연사지(長淵寺址)가 있다. 장연리 장수골 입구에서 육화산을 정면으로 올려다보니 희뿌연 연무가 가득하다. 마을은 완만한 경사가 있는 계곡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신라 석탑이 있는 장연사지의 존재 등으로 보아 마을 형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장수곡(長水谷) 또는 절골로도 불린다. 장연교에서 마을로 들어서면서 왼쪽 계곡 건너편 낮은 구릉에 감나무 밭이 있고 그 가운데 나란히 서있는 두 탑이 보인다. 청도 장연사지에는 절집이 있었겠지만 모든 전각들은 허물어지고 없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비바람에 시달려온 석탑과 무너진 석조물만이 천 년 세월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지금은 향화와 독경소리가 사라져 적막뿐인 절터는 사색의 공간으로 적합하다. 천 년의 시간을 흘러온 그곳은 산전수전 다 겪은 온화한 할머니처럼 찾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장연사는 언제 세워지고 언제 사라졌는지 학계에서도 기록을 찾아내지 못해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지금도 절터에 남아 있는 탑의 양식으로 봐서 통일신라 후기에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천 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곳

폐사지 마당에 서 있는 ‘청도 장연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1980년 9월16일 문화재청에 의해 보물 제677호로 지정됐다. 두 탑은 모양과 크기가 거의 같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각각 하나의 돌을 다듬어 만든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된 3층의 탑신은 네 개씩의 우주(隅柱·모퉁이에 세운 돌기둥)와 지붕돌에는 4단씩의 층급받침이 눈에 들어올 뿐 별다른 장식은 없다. 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올려놓았다. 전체 높이가 동탑은 4.6m, 서탑은 4.84m로 무난하고 평범한 석탑이다. 주위에 들어선 감나무들과 어울린 분위기 또한 평범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멋을 지닌 불국사 석가탑의 아름다움도 연상된다. 석탑은 종교철학으로 따지면 드높은 정신세계를 알리는 상징이자 엄격함과 고귀함을 지닌다.

서탑은 일찍이 무너져 있었는데 개천가에 버려졌던 석재들을 모아서 1980년 2월에 복원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몸돌과 지붕돌 모서리에 크고 작은 손상이 있으며 하층기단은 대부분이 보충한 석재로 이루어졌다. 긴 세월 동안 비바람을 이기고 이끼를 벗하며 처연하게 서 있는 석탑, 오랫동안 동탑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켜왔는데 서탑을 다시 복원하여 나란히 서있게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동탑은 1984년 12월 수리를 위해 해체 복원했다. 당시 1층 몸돌 상단에서 놀랍게도 사리장치가 나타나 관심을 끌었다. 목합(木盒)이 나왔는데 뚜껑에 두 줄의 선이 그어진 것 말고는 아무런 무늬가 없다. 물레를 돌려 표면을 고르게 다듬고 전체에 금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칠은 거의 벗겨졌다. 내부는 좁고 깊게 파여져 있는데 그 속에서 유리로 만든 녹색 사리병이 발견됐다. 사리합의 높이는 11.8㎝, 사리병은 3㎝이다. 재질이 나무로 만든 사리합은 그 예가 무척 드물다고 하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절터였음을 증언해 주는 각종 석물들은 절터 서편에도 즐비하게 놓여있다. 절의 역사를 말해 주는 석조 문화재들이다. 폐허에 덩그러니 남은 돌덩이들이지만 신라석공의 손을 거친 이후, 천 년 세월이 지났다. 비록 돌이어도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을 속에 품고 있는 것 같아 부드러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폐사지는 볼 것이 별로 없겠지만 그래서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무너지고 깨진 돌조각에서 선조들의 깊은 신앙과 세월의 무상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청도는 감의 고장이다. 장연사지에서 내려와 하천을 건너면 또 감나무 밭이 있고 그 안에도 당간지주가 서 있다. 이 석물에는 독특한 무늬가 새겨져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신라시대의 당간지주에 수놓은 무늬가 조선시대의 반닫이나 삼층장의 백통 장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안쪽을 제외한 3면을 곱게 다듬고 바깥쪽에 선명하게 양각했다. 돌에 새겨진 곡선이 대칭적이어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점에서 특별한 석조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순례객의 발길이 끊어진 빈 절터의 당간 지주가 지닌 이미지는 기다림이다. 이는 사람들이 떠나 버린 동구 밖 느티나무와도 같은 느낌이다. 사실 장연사지의 석물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탑에서 개울을 건너서 골짜기를 따라 마을 쪽으로 오르면 바로 오른쪽에 사원재(思遠齋)라는 재실이 있다. 그 마당에도 원래 장연사지에 있었다는 사각형의 석조와 또 하나의 당간지주가 잡초 속에 놓여 있다.

마을의 고샅길을 잠시 빠져나오면 작은 절집이 나온다. 그 옛날에는 큰절 장연사의 부속암자가 있던 곳으로 추측하는 장소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량은 단출하다. 대적광전, 삼성당, 심검당, 요사채가 전부다. 12년 전 세워진 대한불교조계종 장연사(長蓮寺)이다. 현재 이 절에는 두 점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장연사소장 묘법연화경’은 유형문화재 제517호인데 1420년(세종2)에 화엄대사 성거(省琚)가 등재본을 필사하고 판각한 판본의 후쇄본이다. 보관상태가 양호하여 조선 초기의 묘법연화경 판본 계통을 연구하는 서지학의 중요한 자료이다. 또 한 점은 유형문화재 제518호인 ‘장연사소장 정선동래선생 박의구해’(精選東萊先生 博議句解)이다. 이 책은 조선 초기에 전래되어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필독서로서 후대까지 꾸준히 열독된 서적이라 한다. 권극중(權克中)의 발문에는 1417년(태종17)의 간행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책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천 년 전 치열했던 불법의 수행도량이 오늘날에도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장연사 주지 월제스님은 “폐사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정밀한 지표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지역의 폐사지에서는 한국의 불교미술사를 포함하여 역사를 다시 쓸 만한 획기적인 자료의 출현이 언제든 기대된다. 방치되어 있던 폐사지에서 갑자기 국보급 유물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지자체 단위의 사업에서는 역사자원을 활용한 관광콘텐츠 확충으로 연결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사회에도 다방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정밀한 지표조사와 관리 필요

돌아가는 길에 다시 장연리 입구 옛 절터로 내려왔다. 감나무 사이를 걸으며 역사적 상상력의 날개를 펴는 것은 천 년 전 신라문화에서만 느끼는 아스라한 정취이다. 통일신라 당시의 가람은 불국사의 절집 배치처럼 거의 쌍탑 일금당식(雙塔 一金堂式)이었다. 장연사지 이곳도 한때는 두 탑이 뜰 가운데 서있고 그 뒤로 금당이 자리 잡은 반듯한 가람으로 우뚝했을 것이다. 절 마당 앞으로 계류가 흐르는 전형적인 가람 배치는 건너편에서 반야용선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건너오는 스토리로 연결된다. 당시 절에서 쌀 씻은 뜨물이 앞 개천을 따라 멀리 있는 동창천까지 뿌옇게 흘러갔다는 내력도 있으니 절의 규모도 짐작된다. 탑돌이를 하기위해 몰려오는 사람들로 사시사철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과거 화려했던 영화와 위엄은 사라지고 없고 쓰러져 버린 절터에서 쓸쓸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나온 내력도 사라진 연유도 모른 채 세월 속에 묻혀버리고 그 이름과 몇몇 석물들만을 지상에 남겨놓고 있다. 그래도 보는 눈이 있는 이는 그 빈 공간에서 말없는 깨달음을 발견한다. 석탑 옆 잔디밭에는 연두색 새싹도 보인다. 폐허로부터 받는 뜻밖의 힐링, 삶이 번잡해져 빈 절터를 서성일 때 마음은 홀로 외롭고 홀로 따스하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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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세월이 지나며 모든 전각들은 사라졌고 절터만 남아 있는 청도군 매전면 장연사지. 보물 677호 서탑(좌)과 동탑만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천년 세월이 지나며 모든 전각들은 사라졌고 절터만 남아 있는 청도군 매전면 장연사지. 보물 677호 서탑(좌)과 동탑만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장연사지 건너편 감나무 밭 가운데 서있는 당간지주에 대칭적 곡선으로 새겨진 독특한 무늬가 눈길을 끈다.
▲ 장연사지 건너편 감나무 밭 가운데 서있는 당간지주에 대칭적 곡선으로 새겨진 독특한 무늬가 눈길을 끈다.
▲ 장연사지의 역사를 증언해 주는 석물들이 절터 서편에 놓여있다. 천 년 전 신라석공의 손을 거친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 속에 품고 있다.
▲ 장연사지의 역사를 증언해 주는 석물들이 절터 서편에 놓여있다. 천 년 전 신라석공의 손을 거친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 속에 품고 있다.


▲ 장연사지는 앞쪽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는 가람 배치이다. 건너편 속세에서 불법의 세계로 건너가는 스토리 연결이 상상된다.
▲ 장연사지는 앞쪽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는 가람 배치이다. 건너편 속세에서 불법의 세계로 건너가는 스토리 연결이 상상된다.
▲ 신라고찰의 부속암자가 있던 곳에 있는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 장연사에는 2점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 신라고찰의 부속암자가 있던 곳에 있는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 장연사에는 2점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 연꽃잎이 마을과 장연사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육화산(六花山)은 청도 매전면의 진산이다.
▲ 연꽃잎이 마을과 장연사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육화산(六花山)은 청도 매전면의 진산이다.
▲ 장연사지 삼층석탑의 동탑에서 나온 목제 사리합과 유리로 만든 녹색 사리병.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장연사지 삼층석탑의 동탑에서 나온 목제 사리합과 유리로 만든 녹색 사리병.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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