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마농의 샘’…시인 천영애

‘운명의 힘’이 예고하는 인간의 운명,

시인 천영애
한 편의 음악이 영화에서 전개되는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며 끌어가는 힘은 강렬하다.

신은 우리들의 희망에 따라 음악을 만들지 않았지만 영화 ‘마농의 샘’ OST인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은 희망을 갈구하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마농의 운명이 바뀔 때마다 영화에서는 ‘운명의 힘’ 서곡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이다.

영화는 붉은 카네이션이 자라는 프랑스 프로방스 언덕에 있는 마농의 옛집을 보여주면서 ‘운명의 힘’ 선율의 흐름 속에서 시작된다. 카네이션은 ‘운명의 힘’과 뒤섞이면서 꽃이 아니라 앞으로 위골랭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세자르 가문의 붉은 피를 예고한다.

2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1부는 1986년에 제작되었고 2부는 1년 후인 1987년에 제작되었다.

“마르셸과 재클린 파놀에게 바침”이라고 영화의 서두에 쓰여 있는데, 프랑스 영화 100년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되는 이 영화의 감독 클로드 베리가 원작자인 마르셸 파놀과 부부인 재클린 파놀에게 헌정하는 영화인 셈이다.

불세출의 배우인 이브 몽땅을 비롯하여 세자르 남우주연상을 받은 다니엘 오떼유, 제라르 드 빠르디유와 그의 실제 부인 엘리자베스 드 빠르디유, 그리고 주인공 마농 역의 엠마누엘 베아르까지 프랑스의 대표 배우들이 모두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화려한 출연진만큼 완성도가 뛰어난 이 영화는 전미 영화 비평가협회 작품상 및 시네마 아카데미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탄탄한 시나리오와 뛰어난 배우들의 예술성을 증명했다.

이 영화는 자기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세자르 가문의 비극을 그리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악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자신에게 피해가 끼칠까봐 이웃의 악에 입을 다무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일들이다.

사람들은 이웃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불행이 자기에게 닿을까봐 피하고 외면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이며 비사회적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악한 행위를 외면하는 것은 그 악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세자르 가문의 이기심과 탐욕에서 비롯된 죄악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악의 공범이다. 그래서 마농은 마을로 흐르는 샘을 막아 버림으로써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 세자르 가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악은 선을 이길 수 없다는 통속적인 관념 또한 이 영화에서는 위대하다. 선이 언제나 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한 사람의 작은 선이 마을 전체의 거대한 악을 이겨낸다. 그것에서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은 이 영화의 시작이면서 끝이다. 예술 작품에는 그 작품을 이해할 있는 장치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운명의 힘 선율을 들으면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미리 읽어낼 수 있다.

“내가 샘에 대해서 알려줬더라면 그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아직도 가족들과 함께 살아 있을 텐데”라고 했던 마을 사람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마농의 복수를 겪으면서 운명의 힘을 하모니카로 불던 곱추 장을 떠올린다.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위골랭은 아들의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아들 장을 그리워하며 죽음의 문 앞에서 “오직 굽은 등과 내가 그에게 준 고통만 보였다”고 속죄한다.

자식을 죽게 한 위골랭이 속죄와 고통에 비참해하면서 장의 굽은 등과 자신이 장에게 준 고통만 보았던 것이 아니라 아마도 장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부는 하모니카 소리도 들었으리라. 그래서 죽음의 시간에 그는 장의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며 진정한 속죄의 길로 들어섰으리라 믿는다.

천영애(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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