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는 돌

이구락

단양천 유천 물길 만나/ 남천강 되어 다시 흐르는/ 월연정, 아득한 돌밭에 비가 내린다/ 비에 젖어 돌들은 비로소 눈뜨고/ 오랜 잠의 숲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다/ 형형색색, 꽃피는 돌밭/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청록빛, 주름 깊은/ 큰 돌 옆에 앉아 본다/ 돌은 힘 있는 근육 슬며시 풀며/ 자욱한 물안개로 푸른 산자락 지운다/ 눈감으면 돌의 숨결 너머 나직이/ 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바람과 우레 그 위에 설핏 둥지를 튼다/ 비 그치고/ 눈부신 햇살 돌 위에 내려와 앉는다/ 돌은 돌아누워 서서히 다시 잠들며/ 꿈꾸기 시작한다/ 하늘이 그의 잠을 다시 깨울 때까지/ 깊은 주름 속에 고이는 부질없는 꿈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야위어가며

『와선』 (시와반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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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의 삼라만상에 정령이 있다는 생각은 원시시대부터 있어온 세계관이다. 생물체는 물론이고 무생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 또는 존재’가 깃들여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어떤 고대문화권에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애니미즘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산과 강은 물론, 돌 하나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신령스러운 바위를 숭배했던 거석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드문드문 남아있다. 이구락 시인은 돌을 의인화한 것이 아니라 돌 그 자체를 생명체로 보고 있다. 애완동물 기르듯 돌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인다. 응마주색난석(鷹馬酒色蘭石)이라 한다, 10대에는 매, 20대에는 승마, 30대엔 술, 40대엔 색, 50대엔 난초, 60대엔 돌을 즐긴다는 의미다.

밀양 월연정은 단양천과 유천이 합류하여 남천강이 되는 지점에 자리한 수석산지다. 월연정에는 잘 생긴 돌들이 지천으로 잠자고 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돌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다. 물 만난 돌은 오랜 잠의 숲에서 깨어나 부스스 눈을 뜬다. 잠에서 갓 깨어난 돌들이 눈부시다. 화려한 꽃처럼 빛나는 돌밭에서 주름 깊은 청록 빛 돌이 눈에 든다. 그 옆에 앉아보니 돌은 호응이라도 하듯 힘을 빼고 나긋나긋하다. 돌을 사랑하면 돌도 사랑을 느낀다. 푸른 산은 물안개 뒤에 숨어 숨을 죽인다. 시인도 살포시 눈을 감는다. 돌의 숨결이 고요하게 들려온다. 애정이 묻어난다. 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른다. 사랑과 함께 바람과 우레도 돌 위에 둥지를 튼다. 햇살이 비치면 돌은 돌아누워 잠든다. 비가 잠을 깨울 때까지 돌은 잠잔다. 돌은 꿈꾼다. 깊은 주름은 시간이 만든 무늬다. 그 무늬를 풀어내다보면 돌이 품고 있는 겹겹의 발자취를 본다. 돌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을 내면에 품고 있다. 돌을 살뜰히 돌보다보면 어느 순간 숨은 속살이 비친다. “돌은 누가 해독해 줄 때까지 겹겹의 무늬로 몸을 감싼다 그 무늬 속 나이테를 따라가다 보면 억 년 전 불의 제단과 만 년 전 얼음궁전과 천 년 전 먼 우레의 들판이 바람벽처럼 우우우 일어서서 삼년 홍수와 칠년 가뭄까지 불러낸다”(이구락 「돌의 시간」 중) 돌의 꿈은 깊은 주름 속에 숨는다. 부질없는 꿈으로 야위어 가더라도 돌은 계속 꿈꾼다. 돌의 꿈은 시인의 꿈이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시인의 특권이다.

시는 긴 세월 돌에 쌓인 시간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시간을 미분하고 적분하기도 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한다. 돌이 품고 있는 내면의 속살과 존재의 본질이 시적 상상력으로 분출된다. 시간의 궤적을 쫓아 돌 속에서 희망과 꿈을 읽어내는 시인의 번득이는 눈빛이 뜨겁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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