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경북’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시인협회는 미증유의 재난 한가운데 서 있는 지역 시인들이 이 사태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대구시협 카페 공지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회원님들께서 시, 단상, 칼럼 등 장르에 관계없이 발표, 미발표 글들을 ‘코로나19, 대구경북’에 올려주십시오. 어떤 내용의 글이라도 괜찮지만 다음 사항은 꼭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펌글(뉴스, 정보 포함)은 올리지 마십시오. 특정 정당이나 단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글도 올리지 마십시오.”

이 코너를 시작하는 공지 글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경우에도 ‘펌글’은 올리지 말아 달라는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 때문이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브렉시트와 미 대선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서 ‘가짜 뉴스(페이크 뉴스, fake news)’의 문제가 크게 주목받았다. 그래서 ‘탈진실’이 그해의 단어로까지 선정된 것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탈진실’은 “감정이나 개인적 믿음이 공공 여론을 형성하는데 객관적 사실보다 더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2016년 기준으로 ‘탈진실’은 2015년에 비해 20배나 많았다고 한다. 가짜 뉴스는 나치의 괴벨스가 즐겨 사용한 선동 수단이다. 거짓 정보와 루머를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부도덕한 선동가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짜 정보나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오늘날은 그 목적뿐만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페이스북, 트위트, 유튜브 등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의 악용으로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단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모두는 생각과 지향하는 바가 달라도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고 위기에 처한 기업과 국민을 살리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상대를 무조건 지지하거나 비난하는데도 가짜 뉴스는 힘을 발휘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와 사진을 곁들인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을 부추긴다. 확증 편향은 선택 편향의 한 종류로 자신의 선입견에 확신을 더해주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한다. 가짜 뉴스는 집단의 동질성을 강화하는데 이용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과 반대되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자가격리가 길어짐에 따라 정신과 문의가 많아지는데, 자가격리 중에 벽이나 식물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말을 걸었을 때 벽이나 식물이 대답하면 진료하러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의사가 전해주었다. 나는 이 내용을 동료 시인들에게 전달하면서 “시인은 예외입니다. 식물과 벽을 향해 질문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들의 답을 받아쓰는 것이 시 창작이니 부디 열심히 질문을 하시고 많이 받아쓰십시오. 다만 작품으로만 쓰시고 일상 대화에서는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자가격리로 인해 실성해졌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다소 농담조의 사족을 달았다.

“겨우내 얼었던 까마귀 목을 타고/예감할 수 없었던 근심이 흘러나온다//봄 타는 아들에게 /콩을 갈아 두부찌개를 끓이는 모성이/모서리 굴뚝을 잡고 지붕을 돌리면/언제 칭얼거림이 있었냐는 듯/맷돌을 맞잡은 우리의 손에서/담장 너머로 주르르 넘쳐나던 웃음꽃//입마개한 전깃줄 위 까마귀들/좌로 우로 간격을 벌려 앉고/병든 목청 한 마리는 온천지 까악까악/치아 흰 매화는 멋모르고 신명이 났다//달려오는 구급차처럼/봄비가 다녀간 뒤 내다보는 창밖/다문다문 약쑥 덤불 우거지는 소리가/열 오른 가창의 이마를 짚어주고 있다” 대구시협 카페 ‘코로나19 대구경북’에 있는 박윤배 시인의 ‘대구, 가창, 봄 근황’ 전문이다. 약쑥 덤불 우거지는 소리와 함께 주단 깔지 않은 층계로 쏟아지는 저 황홀한 벚꽃, 꽃비들의 야단법석이 코로나를 몰아내주길 소망한다. 인생은 빈 술잔이 아니다. 4월이여, 천치처럼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오라. 다만 잔인하지는 말고 화사하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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