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의 신간 소개

발행일 2020-04-01 17:05: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녹녹치 않은 여건에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문인들로 인해 대구경북은 근대 문화예술의 발상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문인들의 최신 발표작을 소개한다.

이근자 소설집 ‘히포가 말씀하시길’
▲히포가 말씀하시길/이근자 지음/푸른사상/295쪽/1만5천500원

소설가 이근자의 첫 번째 소설집 ‘히포가 말씀하시길’이 간행됐다. 다양한 가족 군상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굴곡을 다룬 가족서사이다. 통상 따뜻함, 포용으로 정의되는 가족의 의미와는 달리 가족의 중심축인 가부장제의 균열, 가족의 이기주의와 위선을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가족도 결국은 혈연보다도 상상과 가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것이다.

급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아빠 ‘히포’에게 신장을 이식하기 위한 검사를 받으러 가족들이 병원에 모인다. 그러나 신장을 떼어주기 싫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위선적이며 이기주의로 팽배한 인간의 모습만 보여준다. 본격적으로 신장이식 이야기가 오가며 가족의 모습은 파편화되고, 허울뿐인 아버지의 모습과 실질적인 가부장이 어머니였음이 드러난다.

차에 치인 피투성이 노파를 외면한 여자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지하철과 달팽이’는 분열된 가족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 ‘거리두기’임을 잘 보여준다.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가족 사이에서도 거리를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족 밖으로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는 ‘옥시모론의 시계’, 입양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속불꽃’ 외 여섯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가족의 새로운 정의와 인물 간의 갈등을 정교한 문장과 치밀한 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갈등을 통해 과연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따뜻하고 포용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가족의 의미와 달리 가부장제의 균열, 가족 이기주의, 가족 구성원의 위선 등을 보여주며 혈연 공동체보다도 가상 공동체로서의 가족 개념에 관심을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소재를 넘어 갈등을 드러내는 주제의 중심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공간에서 다르게 변주되는 가족의 형태를 보면서 가족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가족의 정의를 다시 규정하도록 독자에게 요구한다.

시인 정숙의 여덟 번째 시집 ‘연인, 있어요’
▲연인, 있어요/정숙 지음/시산맥사/121쪽/9천 원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 신인상 수상 후 첫 시집 ‘신처용가’를 출간, 수많은 대구 사투리를 시어사전에 수록했던 지역 여류시인 정숙의 여덟 번째 시집 ‘연인, 있어요’가 출간 됐다.

시마을과 포엠토피아 등에서 시 강의를 해온 작가는 대구문학아카데미, 각 지역도서관, 복지회관 등에서 20여 년간 시 창작 강의도 맡고 있다. 또 ‘처용아내’란 이름으로 시 낭송과 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난해 대구컬러플페스티벌에서는 ‘봄날은 간다1’ 시극공연의 극본을 쓰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인은 “사물과 대상을 통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을 얻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삶에 대한 자각과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며 “나와 대상·세계·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견을 통해서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통합적인 안목을 시로 승화하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시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형태를 알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막막함 같은 것. 즉 호의적인 듯 하면서도 거친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시인은 이를 ‘바람마구니’라고 지칭하는데, 불교적 의미로는 번뇌나 욕망 같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벽’들을 보면서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그 벽을 자신의 시로 도배하고 싶어 한다. 매순간마다 부딪히는 장애물을 삶의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은 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히는 것은 쉽게 읽히는 대로, 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는 시는 모호한 대로 나름의 철학을 부여하며 깨달음의 미학을 투영시키고 있다. 가깝게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아가서는 사물로, 대상으로, 세계로 확장되는 자각과 인식, 발견의 미학과 깨달음의 아포리즘이 집대성되어 있다.

시인은 항상 시는 무엇보다 진정성과 감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시는 그렇게 되려고 늘 노력하지만 독자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고민이라고 이야기 한다.

정만진 장편소설 ‘한인애국단’
▲한인애국단/정만진/국토/288쪽/1만5천 원

대구시 교육위원과 사단법인 역사진흥원 초대 이사장을 지낸 정만진의 장편소설 ‘한인애국단 김구, 이봉창, 윤봉길 등의 40년 의열 투쟁사’가 출간됐다.

지난해 펴낸 ‘대구 독립운동 유적 100곳 답사여행’이 ‘2019 대구시 올해의 책’에 선정됐고, 소설가로서 독립운동 소재 장편소설 ‘소설 대한광복회’, ‘소설 의열단’을 펴냈다.

1906년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일어선 기산도 중심의 ‘자강회’와 나철 중심의 ‘감사의용단’은 구한말 최초의 의열 독립운동단체다. 이후 장인환과 전명운, 안중근과 우덕순, 이재명 등의 의사들이 스티븐스,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을 처단 또는 중상을 입힌다.

1910년대의 대한광복회, 1920년대의 의열단, 1930년대의 임시정부는 각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의열 독립운동 단체들이다. 박상진, 우재룡, 채기중, 김한종, 김원봉, 이종암, 김상옥, 김익상, 이봉창, 윤봉길 등 많은 지사들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대만에서 일본군 대장을 처단한 백정기,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일본에서 당시 최고의 친일파 민원식을 처단한 양근환 등의 지사들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1945년 7월 마지막 의열 투쟁으로 부민관 거사가 있었다.

이 모든 독립운동기의 의열 투쟁들을 두루 다룬 장편소설은 ‘한인애국단’이 처음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의 독립운동정신 계승 의지를 북돋우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한인애국단’으로 정한 까닭에 대해 1906년 자강회로부터 1945년 부민단 거사에 이르기까지 의열 투쟁을 실천한 모든 분들의 활동이 연상되는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무장 항일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대한광복회와 의열단을 다룬 장편은 이미 발표했기에, 그 이전인 1900년대와 그 이후인 1930년대 의열 투쟁까지를 모두 담은 ‘한인애국단’의 이름을 새겨두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던 때문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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