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벚꽃이 진 자리에 초록의 순이 돋아나고 있다. 투명하고 밝은 햇살이 참으로 우리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아름다운 봄날임을 상기시킨다. 살랑대는 바람에 모처럼 머리를 식히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울린다. 화면을 열어보니 부고였다. ‘동기의 본인 상’이라니. 갑자기 쩌릿한 아픔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에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망 개원의, 진료 과정서 감염” 결국 그가 코로나19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먼저 간 것이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그때에도 일반적인 외래 환자를 정성을 다해 오래도록 진료하였다고 한다. 그의 진료실을 방문했던 당시 환자 중에서 확진자로 밝혀진 이가 두 차례나 있었다니 환자 진료 과정에서 감염되어 결국 이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의과대학 6년을 함께한 동기, 울고 웃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체격이 좋아서 체육대회 씨름 경기가 있으면 꼭 이름이 오르내렸던 친구, 복사꽃 색깔의 티셔츠를 즐겨 입고 자리에 앉아 더운 여름날에 땀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공부하던 듬직한 그의 실루엣을 잊을 수 없으리라. 말없이 공부하고 조용히 자기 일을 챙기던 이, 정말 태어나면서부터 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이리라 여겼던 사람,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같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고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30여 년을 보냈다. 그동안 어쩐 연유에서인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어찌 그렇게 얼굴을 안 보고 살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새삼 후회가 밀려온다. 옷깃만 스쳐도 수억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데 같은 대학을 나오고 같은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같은 의사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핑크빛 티셔츠와 듬직한 덩치를 떠올리며 그의 선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렸지만, 만나지 못했음을 의아해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그를 이 세상에서는 더는 마주 대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온다. 더구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빈소를 만들지도 못하고 감염병 관리 차원에서 밀봉하여 바로 화장을 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온몸에 불기운이 닿는 듯 화끈함이 전해지는 것 같다.

동기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날 나의 처지를 돌아본다. 언제 어느 때든 절대자가 부르면 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정말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까. 남아있을 사람에게는 무엇을 남기고 또 어떤 당부를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남기는 심중에 든 한마디는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오랜 날이 지속하다 보니 점차 우울 모드로 접어든다. ‘코로나 블루’라고 하지 않던가. 색색의 향기로운 꽃들은 유난히도 아름답게 피어나서 일찍 봄이 왔음을 만방에 알리지만, 온통 마스크 쓴 얼굴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하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모임도 나가지 않고 집회도 멀리하는 사회적 거리 지키자는 운동의 마지막 날도 지났다. 다시 생활 방역이라는 말로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지키기를 연장한다는 소식으로 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참 답답하고 지겹게 자가에서 나와서 봄을 즐기는 해방을 기다리는 이들도 이즈음에는 정말 많지 않겠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쉽사리 물러가지 않을 것 같다. 정부도 이달 5일까지 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연장해 생활 방역으로 전환, 지속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기로 하는 것 같다. 끝도 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 강행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나 피로감이 몰려오는 듯하다. 사회생활도 경제활동도 많은 지장을 받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바이러스의 침범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잃지 않으려면 방역과 생활이 조화되는 생활방역을 잘 계획하여 철저히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도 드물지 않고 특별한 치료제도 없고 백신이 개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언제 종식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바로 사회적 격리를 잘 지키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하고 삼시 세끼 밥을 먹듯이 자연스레 몸에 배도록 방역을 생활화해 하루빨리 코로나19 종식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코로나19를 위해 애를 쓴 이들의 노고와 고생하다가 먼저 떠난 이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지 않으랴 싶다.

잔인한 4월이지만 다시 일어서라고 친구가 손짓한다.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하면서도 마음만은 늘 함께하는 희망의 4월이 되기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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