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광장-묻지마 투표의 유혹

발행일 2020-04-12 15:17:1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 논설위원

봄꽃이 절정이다. 향연은 사라졌다. ‘4·15 총선’이 이틀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도 실종됐다. 정치의 장이 될 노변정담도 없다. 고작 선거 방송을 통해서나 후보자 면면과 공약을 귀동냥한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특정 정당에 대한 편애와 저주만 남았다. 유권자의 관심도 시큰둥하다.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도 맥을 못춘다. 무소속과 기타 정당 후보는 존재감도 없다. 거대 양당의 힘겨루기에 매몰됐다.

비례 대표라는 꼼수 정당은 조국의 부활을 선언하고 박근혜가 춤추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광화문 광장을 뒤흔들던 우리공화당도 바람 앞의 등불이다. 선거판은 거대 양당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만 꿈틀댄다.

TK는 거대 양당으로부터도 관심 밖이다. 여야 모두에게서 창밖의 그녀다. 정치적 편식 탓이다. 여야 지도부는 뻔질나게 PK를 찾는다. 다 꺼진 가덕도신공항의 불씨까지 되살리려 부채질한다. 여당은 TK에 공들여봤자 이삭줍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야당은 산토끼만 쫓느라 안달이다. TK 선거는 흥미를 잃었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결말은 뻔한 거니까.

TK는 다급하면 찾고 머리 숙이는 야당의 이중적인 행태가 얄밉기 짝이 없다. 아쉬울 때만 ‘보수 성지’니 ‘텃밭’이니 하며 집토끼를 챙긴다. 그러다가 형세가 유리해지면 외면한다. 지역에서는 보수 야당의 이런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비슷한 처지의 호남 사례가 대비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호남은 만년 주인 행세를 해온 민주당의 콧대를 아주 뭉개버렸다. 선거 결과 광주·전남 28석 중 국민의당에 25석을 몰아줬다. 안철수 국민의당의 완승이었다.

호남을 신주 모시듯 했지만 오만이 화를 불렀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분노, ‘호남 홀대와 소외론’이 회초리를 들었다.

-민심 외면한 보수당, 공천 심판 물건너가

미래통합당의 행태도 민주당과 오십보백보다. ‘서울 TK’의 낙하산 공천 등 막장 공천이 지역민의 분노를 샀다. 반발이 컸다. 결국 두 곳만 후보를 바꿨다. TK의 일편단심이 TK를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겨지지 않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호남에서 민심을 외면한 공천이 호되게 당했다. 민심에 반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절감했다. 중앙당의 일방통행식 내리꽂기가 사라졌다. 결국 ‘시스템 공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이후 호남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로 화답했다.

미래통합당은 ‘텃밭’에서 아픈 경험이 없다. 그래서 오만하다. 기껏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게 큰 이변이었다. 뼈를 깎는 자성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금세 잊었다.

TK와 호남의 차이는 통합당은 TK를 ‘봉’으로 여기고 민주당은 텃밭 민심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양 지역 모두 도긴개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택지 없어 묻지마 투표 망령 되살아날 듯

21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TK 여론은 현 정권의 경제 실정과 외교·안보 파탄 등 나라를 망가뜨린 정권 심판이 최우선이라며 이를 간다. 또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기형아를 낳고 위성정당 꼼수를 부린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기를 쓴다. 전 국민을 열패감에 빠트린 조국을 복권시키려는 몰염치한 추종세력을 끌어내리겠다고 벼른다.

정권과 한통속으로 말아먹은 여당을 준엄하게 꾸짖고 지역 민심을 외면한 보수 야당의 오만을 심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여의치 않다. 양대 거대 정당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지만 불행하게도 대안이 없다. 밀어줄 만한 정당이 없다. 통합당의 행태를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지역민들의 심사는 불편하다. 최선은 없고 차선을 고민하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 누가 나왔는지, 공약과 정책은 무엇인지 별로 관심 없다. 대신 특정 당에 대한 묻지마 투표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TK가 또다시 ‘보수꼴통’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호남도 묻지마 조짐은 있다. 대안부재의 현실이 안타깝다. 코로나 악몽 속에 꽃이 피고지는 지도 잊은 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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