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보물 보유한 대구 서구 지역문화의 오아시스

▲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자리한 제1종 전문박물관인 ‘행소박물관’ 외부 전경
▲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자리한 제1종 전문박물관인 ‘행소박물관’ 외부 전경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웅장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동산도서관이다. 이곳에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 22종을 비롯해 약 7만8천여 권의 고문헌을 수장한 벽오고문헌실이 있다. 전국 사립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보물 보유 수량을 자랑한다.

벽오고문헌실의 출발은 1968년 도서관 서가에 일반 책들과 함께 관리되고 있던 고서(古書) 600여 권을 추려 고문헌실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대표적 소장품으로 왕실 한글 편지첩인 ‘신한첩’, 훈민정음 최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용비어천가’, 조선시대에도 구구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신간상명산법’,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아버지 숙종으로부터 받아서 읽었던 ‘삼국사기’ 등이 있다.

▲ 계명대 동산도서관 벽오고문헌실 소장 보물 1946호 ‘신한첩’
▲ 계명대 동산도서관 벽오고문헌실 소장 보물 1946호 ‘신한첩’
보물 1946호 ‘신한첩’은 숙휘공주가 왕실로부터 받은 한글 편지 35편을 모은 편지첩이다. 숙휘공주는 조선 제17대 효종의 4녀로 태어나 12세에 정제현과 혼인해 출궁했으며, 이후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신한첩’에는 아버지 효종과 어머니 인선왕후, 오빠 현종과 올케 명성왕후, 조카 숙종과 조카며느리 인현왕후가 각각 딸과 동생, 고모에게 쓴 한글 편지가 들어 있다.

계명대 홍보실 하지원씨는 “조선시대 남자는 보통 한문을 사용했기 때문에 국왕의 한글 편지는 매우 귀하다. 받는 사람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한글로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며 “효종과 현종, 숙종의 한글 글씨를 ‘신한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인현왕후의 한글편지는 이 ‘신한첩’에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 계명대 동산도서관 벽오고문헌실 소장 보물 제1463호 ‘용비어천가’
▲ 계명대 동산도서관 벽오고문헌실 소장 보물 제1463호 ‘용비어천가’
보물 1463호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사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1447년 처음 간행됐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 후 이를 시험하고 조선 창업의 정당성을 알릴 목적으로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는데,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물 1704호 ‘신간상명산법’은 조선시대 대표 수학교과서다. 조선시대 잡과 과목의 산사(算士) 선발의 필수 교재로 사용됐고, 우리에게 익숙한 구구단이 ‘구구합수(九九合數)’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79호 ‘삼국사기’는 한반도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이 ‘삼국사기’는 1711년에 숙종이 승정원(현 청와대 비서실)을 통해 연잉군에게 하사했던 책이다. 연잉군은 후일 영조로 조선 후기 부흥을 이끈 임금이다.

▲ 제1종 전문박물관인 계명대 행소박물관 내부 전경
▲ 제1종 전문박물관인 계명대 행소박물관 내부 전경
한편 계명대학교는 동산도서관 벽오고문헌실과는 별도로 제1종 전문박물관인 행소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행소박물관은 1978년 지역사회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취지로 남구 대명동 대명캠퍼스 동서문화관 2·3층에 개관했다.

1977년 고령 지산동 45호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까지 대구·경북지역 일대의 중요한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또 김천 송죽리 유적 조사를 통해 내륙에서 최초로 신석기시대 마을유적을 발굴했으며, 경주 황성동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서는 신라로 성장해 가는 사로국의 기술력인 제철 유적을 발굴해 고대 경주 황성동에 철기생산과 관련된 전문가 집단이 거주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대가야문화권에 속하는 고령에 산재한 고분군 발굴을 통해 대가야에서도 대규모의 순장이 이루어졌음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산동 32~3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상감환두대도·철제 갑옷·그릇받침·굽다리접시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대가야의 우수한 철기와 토기 문화를 밝혀냈다.

▲ 행소박물관 단오부채 체험 프로그램
▲ 행소박물관 단오부채 체험 프로그램
행소박물관은 2004년 성서캠퍼스에 신축 이전 후 연건평 6천㎡ 규모로 계명역사자료실과 시대별 전시실, 특별전시실 외에 시청각실·학예연구실·유물정리실·유물수장고·뮤지엄카페·세미나실 등을 갖춘 종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행소박물관 권순철 학예사는 “현재 행소박물관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보한 유물과 기증 및 구입 유물 등을 포함해 수 만점을 소장하고 있다”며 “박물관설립 당시였던 1978년에 수장 유물이 1천225점이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또 초기에는 발굴한 고고유물이 많았으나 이후 절구, 가죽신 등과 같은 민속 유물도 꾸준히 확보 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 확보한 국보급 소장품이 현재 계명대 행소박물관 소장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조선후기 김윤겸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진주성도’는 당시 진주성의 모습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 2008년 12월 보물 제16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행소박물관은 수장전시물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특별 전시회를 열어 지역 사회와 소통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인 동곡실은 초대 박물관장을 지낸 김종철 명예교수의 호를 딴 전시공간으로 매년 두세 차례씩 특별전시가 열린다.

▲ 행소박물관이 진행한 조선의 어진 특별전을 관람하는 학생들 모습
▲ 행소박물관이 진행한 조선의 어진 특별전을 관람하는 학생들 모습
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은 한반도 구석기시대 문화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문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약 2천여 점의 유물을 시대별로 전시해 일반에 공개했다. 또 ‘대영박물관전’, ‘중국국보전’, ‘헝가리 합스부르크 왕가 보물전’ 등 지역에서 보기 힘든 대형 국제전시뿐 아니라 ‘조선의 어진’과 같은 희귀 유물전시회도 유치해 지역민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한편 행소박물관은 김천 송죽리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등 대표유물 10여 점을 3D로 제작해 홀로그램 영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유물의 측면과 뒷면을 모두 관찰할 수 있도록 첨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또 박물관 관람 후에는 인증샷을 찍어 이메일로 전송하거나 인쇄해 갈 수 있도록 ‘행소박물관 탐방기 시스템’도 별도로 갖추고 있다.

권순철 학예사는 “향후 행소박물관은 전용 앱을 제작해 누구나 쉽게 박물관의 전시품을 접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소개 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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