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로 세계질서가 바뀔 것이다. 자유 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시대(walled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과거보다 여행과 이주가 어려워지고, 생산 공장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세계는 이전과 절대로 같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면 검역과 봉쇄가 가져온 경제 위기는 있겠지만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고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로19로 인한 대재앙은 과장이라는 것이다. 미래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하와이 대학의 짐 데이터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 가지 미래만 계획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현명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며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대구를 지원하러 온 의료진들이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충을 토로하는 보도가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대구에 왔다는 한 간호사는 “의료진 수당을 올려주겠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현실적으로는 처음 약속된 수당도 깎으려 하고 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깎은 수당마저 지급해주지 않고 있다. 자가 격리비도 지원받지 못하고 보건복지부나 대구시 등 행정 부서에서 받는 정신적 고통이 너무 크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급여와 관련해서 문의하니 ‘돈만 보고 여기 왔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허탈하다고 말했다. 씁쓸하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위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총선 이후 한국 정치는 과연 달라질 것인가. 선거운동 기간에는 여야 모두 유권자의 뜻을 하늘처럼 받들며 공약 실천에 목숨을 걸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가는 언제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있고, 유권자는 언제나 속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을 잘 알고 있다. 적폐청산을 외쳤든, 민생파탄을 외쳤든 시간이 지나면 정치인들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고 유권자는 알고 속고 모르고도 속아 넘어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파이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 권력 독점을 나누는 일, 불공정을 바로잡는 일 등 다양한 불평등과 불의를 타파한다는 명분 하에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기하고 상대를 난도질했지만 결국은 자기가 속한 패거리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만 힘을 쏟았다. 적폐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명분과 비생산적인 정쟁에 시간을 소모할 겨를이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는 역설적으로 공평한 사회라고 말했다. 그는 “근대사회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시대였지만, 현대는 무수한 위험과 각종 재해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노출된 사회”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농약, 핵, 스모그, 황사, 고층빌딩의 화재, 대규모 정전, 치명적인 전염병 등 각종 위험과 재난에 동등하게 둘러싸여 있다. 코로나 사태로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시 회자되고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유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엽말단적인 일에 분노하며 힘을 분산시키지 말고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 정치나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21대 총선이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좀 달라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적이다. 경험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정치와 경제는 여러 면에서 과거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소모적인 분열과 대립으로는 이 세계사적인 위기가 가져올 새로운 환경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한번 승리가 영원한 승리가 될 수 없고, 한번 패배가 재기의 가능성까지 다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치권은 표를 달라고 읍소하던 때를 기억하며 상생과 상호존중의 자세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하며 위기 극복에 최선을 다하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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