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민의를 읽지 못한 정당의 오류

발행일 2020-04-16 14:26:5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

에녹 원장 김시욱

한밤중에 돌아온 아버지는 불콰한 얼굴로 누군가를 칭송하기 바쁘다. 주머니에서 수루메(말린 오징어) 한 마리를 꺼내 주시며 마을 초입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고 경로당이 생긴단다. 장맛비에 물이 불면 등교마저 포기하던 시골 마을이기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일에 지친 어른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지어 준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다음날 아침, 흔하지 않은 고깃국이 밥상에 오른다. 명절에나 먹던 기름진 고기냄새에 모두들 웃음이 가득하다. 매일 매일 기분 좋은 아버지의 얼굴과 고깃국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삼오오 무리지어 투표장으로 떠나는 마을 어른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새로운 다리와 경로당은 수년이 흐른 후 지역 출신 사업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선거에 대한 추억은 이렇듯 막걸리 냄새와 오랜만의 기름진 밥상과 막연한 기대로 점철된다. 이루어지지 않을 공약이라도 산간벽지에 생길 새로운 다리와 신작로를 기대하며 등교하는 것이 좋았다. 어느 당 누구인지도 모르는 후보자들의 이름을 동요처럼 만들어 부르곤 했었다. 수차례 낙선한 후보자를 위해 한번은 찍어주자는 가사부터 다수 당선된 후보자는 양보하란 말까지 후렴구로 이어지는 동요는 차라리 정겹기 조차 했다. 하물며 누구 하나만 찍어 주자니 나머지 후보자들이 마음에 걸려 모든 후보자 이름에 기표하고 나온 할머니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리게 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국정 안정’과 ‘정권 심판’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여야의 대치가 극한 상황을 연출해 왔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은 국정안정을 선택했다. 여권의 압승이다. 경제 실정과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라던 야당의 목소리가 초라하게 느껴질 거대여당의 탄생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당 지도부의 공천과정에서의 잦은 실수와 수많은 막말로 이어진 후보자들의 행태는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임이 투표 결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와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 속에서 힘겨운 국민들은 위안과 희망을 제시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우려이길 바라면서도 지금의 선거 상황에 대한 떨쳐 버릴 수 없는 두려움은 극단의 결과와 진영 논리에 빠진 국민들의 선거후 후유증이다. 보다 큰 상실감은 지지 정당이 몰락한 지지층에서 나타날 것이다. 선거기간을 지나오면서 ‘다름’이 아닌 ‘틀림’이라는 전제를 두고 서로를 공격해 왔기에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와 확증편향은 체념과 절망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오직 사생결단의 분위기 속에 양대 정당의 존폐를 결정하는 선거로 몰아간 SNS와 매스미디어들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라는 선거가 잔혹한 전쟁터처럼 바뀌어 온 책임은 무엇보다 여야 두 정당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정치과정에 있어 분산된 국민의 의견을 참된 여론으로 형성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참여를 조직화 한다는 점에서 분명 정당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에 따라 결집된 의사를 정부에 대변함으로써 대중 또는 이익집단과 정부 사이의 고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민의를 대신하는 정당의 역할은 대의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선거를 통해 의회를 장악한다는 점에서 의회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스템의 운용은 다수 정당을 전제로 한 민의의 다양한 수렴에 있다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상대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집단과 국민의 의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상대성을 인정할 때 건강하고 올바른 정치체제가 확립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실수가 정겹기조차 하다. 유세지원 중에 인접한 두 지역에 의대설립을 약속하는 일이 있었다. 의대 유치는 두 지역 모두 숙원 사업이었으니 얼마나 반길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동일 도내에 두 개의 의대가 설립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 지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삭발식마저 거행되었다. ‘한 갈래 공동 연구의 노력’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일시적인 희망고문이 되었지만, 국회의원 선거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을 위해 그리고 지역민의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을 간절히 바라는 선거임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정권 창출과 수호가 정당의 목표가 될지언정 지역민이 우선적으로 바라는 목표는 아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중소상공인들의 비명이 선거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가정들도 나타날 것이다. 지역민들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국회의원들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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