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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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 서민들의 요리용 화덕이자 겨울 땔감이었다. 목욕물을 데우는 보일러 역할도 했다. 부엌에는 사시사철 연탄불이 꺼지지 않았다. 여름이면 이동식 화덕으로 옮겨져 밖으로 내쫒기긴 했지만 요리할 땐 아무래도 연탄불이 요긴했다. 찬바람이 불면 집집마다 연탄 넣는 일이 제일 급한 겨울채비였다. 연탄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김장독을 마당에 묻어 놓으면 근심걱정이 다 사라졌다. 온 식구가 아랫목에 모여앉아 웃음꽃을 피우곤 했지. 참 소박했던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다. 옥에도 티가 있는 법. 매년 겨울철만 되면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불상사가 끊이지 않았다. 연탄가스는 겨울철 공포의 사신이기도 했다. 연탄가스에 현상금을 걸기도 했으니 연탄가스를 잡는 일은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 이는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미제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동치미 국물을 마셨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터다.

시인은 연탄의 이타성에 주목한다. 제 한 몸 불태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음식을 익혀주는 희생과 봉사는 거의 성인 반열이다. 연탄을 보고 고개 숙여 스스로 반성하고 미생을 성찰한다. 미처 불붙기도 전에 타고남은 재를 상상하며 자신을 불태우지 못하는 용렬함을 꾸짖는다. 희불그레한 연탄재로 남더라도 뜨겁게 불태우는 열정이 아름답지 않는가. 어차피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 무언가에 미쳐 몸을 바치는 삶이 매력적이지 않는가. 자신과 남을 위한 희생이자 봉사다. 연탄으로 이름 붙여진 몸이 불 한번 붙이지 못하고 시커먼 연탄으로 으깨어지는 것은 역천이다. 세상에 태어나 열정을 다해 살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일갈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중)

연탄재는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편안한 길을 만든다. 그 길은 부자동네의 평탄한 꽃길이 아니고 달동네 언덕길이다. 연탄은 마지막 순간에도 몸을 으깨어 남을 위해 봉사한다. 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연탄 리어카꾼의 숨넘어가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 모습을 아름답게 보는 눈 또한 아름답다. 쓰레기통 옆에 쌓여진 연탄재에서 보석 같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예사롭지 않다. 하찮고 어두운 사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교훈을 찾아내는 일은 시인의 몫이다. 남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을 누추하고 비루하다고 덜떨어진 인간으로 보는 세상이지만 찬란한 끝장을 한번 연출해 보고자 느슨한 마음을 다잡는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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