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이명숙

서툰 사랑 아니면 말랑한 후회인 걸슬쩍 스친 정수리 그 문장 탈고하면 별똥별 부러진 그늘 시시콜콜 꿰매면

저승사자 유머가 뒷목 잡아도 올 거지? 꽃냄새 악다구니 시시해도 올 거지? 비췻빛 너의 울안에 이주하고 싶으니

사랑 그 미친 말에 가슴 아직 끓으면

전생 따지지 말고 달빛인 척 와 줄래?첫 봄이 무표정하게 끌어당긴 놀람처럼

-『강물에 입술 한 잔』(2019년, 고요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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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은 서울 출생으로 201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썩을』과 현대시조 100인선 『강물에 입술 한 잔』등이 있다. 사뭇 도발적이면서 좌충우돌, 종횡무진 맹활약하는 시인이다. 열정적인 창작 행보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힘이 되고 밑거름이 되고 있다.

‘목련’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노래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화자의 대상 접근문법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다. 서툰 사랑 아니면 말랑한 후회인 걸이라면서 슬쩍 스친 정수리 그 문장을 탈고하면, 별똥별 부러진 그늘 시시콜콜 꿰매면, 이라고 미완의 문장을 제시하여 독자의 공간을 넓혀준다. 저승사자 유머가 뒷목 잡아도 올 것이고, 꽃냄새 악다구니 시시해도 올 것이라고 여기고 비췻빛 너의 울안에 이주하고 싶기 때문임을 애써 강조한다.

그리고 사랑 그 미친 말에 가슴 아직 끓으면 전생 따지지 말고 달빛인 척 와 줄래, 라고 물으며 첫봄이 무표정하게 끌어당긴 놀람처럼, 이라고 끝맺는다. 봄날의 목련을 이렇듯 역동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만의 특장이다. 새로움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차별화된 시도를 통해 부단히 낯선 시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탐색을 지속적으로 잘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주 오래 전인 1965년이다. 경남 통영 사량도 출신 박재두 시인이 ‘목련’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일간지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된 적이 있다. ‘목련’은 숨 닿을 거리 밖에 돌아누운 어둔 산맥을 떠올리면서 업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강산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스케일을 넓혀 민족적인 문제를 담았다는 점에서 꼭 기억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명숙의 ‘목련’은 그런 내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목련의 재탄생임에 틀림없다. 비근한 소재를 자신만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목련 형상을 창조한 것이다. 그 점에서 이명숙의 ‘목련’은 이채롭다. 열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그의 시조에 ‘명자꽃’이 있다. 명자꽃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시로 쓰고 싶은 대상이다. 그만큼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기 때문이다. 명자꽃에서 뼈와 살 죄 발라낸 어머니의 한세상을 보고 저승꽃이 핀 것을 읽어낸다. 밥 냄새 가신 몸에 애틋한 달빛 한소끔을 그냥 덮지를 못하고, 몸 안의 비린 비늘을 생각하면서 그대 여자였으리, 라고 노래한다. 하여 피치카토로 듣는 막 붉은 꽃잎 한 장을 보며 외딴섬 그늘진 꽃밭에 누군가 다녀갔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복사꽃이 지고 나면 누가 꼭 왔다 간 것만 같아, 라는 이성교 시인의 시 구절이 함께 클로즈업 된다. 아름답고 아픈 시다. 그렇듯‘명자꽃’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심저의 정서를 일깨운다.

‘목련’은 봄의 전령사다. 봄을 가장 환히 밝히는 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노래한 만큼 이명숙의 ‘목련’은 그 수명이 길 것이다. 다채로운 이미지의 충돌을 보이면서도 미적 질서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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