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선거판 뒷담화

발행일 2020-04-21 14:24: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치열한 표심 얻기 전쟁이 끝났다. 유별난 싸움이었다. 거대한 두 개 진영으로 갈려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살벌한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러다가 내전이 터지는 게 아닌지 겁이 났다. 다행히 그런 조짐은 없지만 선거 후유증은 단기간에 쉽사리 아물 것 같진 않다. 막말과 막장공천 탓에서부터 그럴듯한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백가쟁명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백화제방이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역대급 압승이다.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했고, 통합당은 103석을 얻었다. 지역구 의석만 보면 민주당 163석, 통합당 84석이다. 민주당이 통합당의 거의 두 배다. 그런데 비례의석에선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시민당은 33.35%를 득표하여 17석을 확보했고, 통합당의 비례정당인 한국당은 33.84%를 득표하여 19석을 차지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제1야당이 여당을 이겼다. 지역구에서 통합당을 크게 이긴 민주당이 비례에선 오히려 통합당에게 졌다. 정말 기이한 현상이다. 어떻게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일관성 없는 들쑥날쑥한 결과를 다른 시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거의 동일한 수의 지지자를 가진 두 정당이 선거에 임해 전혀 판이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두루뭉술하게 합쳐도 원래의 상황이 왜곡되지 않는다. 선거결과에 대한 새로운 총평이 참이라고 보면 새로운 평석이 가능하다. 이 총평에 터 잡은 분석 및 평가가 엇갈린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유력한 해명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전략이 잘 먹혀들었고 지역구 공천이 가치공학적으로 절묘했다. 상대당 후보를 살짝 이길 정도의 후보를 전 지역구에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력 낭비가 거의 없었다. 조금 위험부담을 하긴 했지만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한 셈이다. 코로나 방역의 상대적 성공, 재정 살포에 의한 매표, 포퓰리즘 복지정책 등을 압승 요인으로 꼽는 분석도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러한 분석은 지엽적이거나 전제조건이다. 사후적인 정당선호투표 최종상황은 모든 선거판 변수들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한 종합적 세력상황을 예측하고 그 한계 안에서 지역 간 판을 고른 맞춤형 자객공천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그에 반해 통합당의 공천은 최악이었다. 민주당이 먼저 공천한 후에 늦장 공천하였는데도 맞춤형 자객공천은커녕 경쟁력 있는 후보를 험지에 보내 상대당 후보의 당선을 돕는 우를 범했다. 자살골을 그렇게 유도하고도 승리하기를 기대했다면 그야말로 바보천치다. 막장공천 내지 이적공천은 무소신의 극치다. 일부 언론과 목소리 큰 소수의 주장에 경도된 결과다. 대폭 물갈이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대폭 수용하고, 다선 중진 험지 차출, 여성과 청년 우선 공천, 참신한 인재 영입, 친박의원 배제, 탄핵주도자 배제, 막말 배제 등 시중에 난무하는 목소리를 다 수용하는 만용을 부렸다. 그에 따른 공천은 다양한 기준에 걸려 엉망이 되었다. 그 결과 줄초상이 났다. 현 정권의 실정과 독선, 집권 여당의 시행착오, 집권세력의 여론 갈라치기 등으로 민심이 집권여당을 등지고 있다는 착각과 오만에서 나온 실책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합의된 룰에 의한 믿을 만한 결과라면,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흔쾌히 수용해야 한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제도도 필요하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이 공정하게 힘을 겨룰 수 있는 룰이 중요하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들이 합의하여 룰을 정해야 하는 이유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편법으로 통과시킨 일은 비상식적인 폭거다. 합리·비합리, 유·불리를 떠나 합의된 룰 아래 경쟁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무시하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결과를 믿지 못하고 음모론이 횡행하는 현상은 룰을 합의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신 때문이다. 편법으로 통과시킨, 선거법을 비롯한 패스트트랙 3법을 다시 심의하여 정상으로 돌려놓는 작업부터 해야 맺힌 매듭이 풀린다. 먼저 배려하고 예우하는 자세가 승자의 자신감이고 진정한 포용이다.

과반의석의 거대여당이라고 오만해선 안 된다. 정치는 비익조와 같다. 좌익만으로 날겠다고 우익을 버리면 새는 곧 추락한다. 막대자석의 S극을 끊어낸다고 N극만 남지 않는다. 서로 배척하는 극성을 잘라내도 남은 부분이 다시 양극성으로 갈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없앨 수 없는, 함께 가는 동반자다. 역지사지의 정치가 민심을 얻고 장기 집권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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