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표본실의 박제가 된 식민지 지식인~

…‘나’는 권태가 고질이 되어 집에 틀어박혀 산다. 불면증에 술·담배로 절어있다.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던 일이 뇌리에 머문다. 숨 막히는 경성을 떠나고픈 잠재의식이 인다. 친구 H가 남포로 바람 쐬러 가자고 한다.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H가 때맞춰 낚아 챈 것이다. 평양역에 내려 부벽루를 거닐다가 장발의 걸인을 만난다. 초탈한 모습이 인상 깊다. 남포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객담 끝에 기인 김창억이 화제로 떠오른다. 그는 광인이거나 철인인 듯하다. 네 사람은 그를 만나러 간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묘한 전율을 느낀다. 그는 황당한 꿈을 꾸는 듯하다. 친구들은 놀리고 비웃지만 나는 그를 이해한다. 김창억은 행세하던 객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비록 신동이었지만 난잡한 부친으로 인해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모친의 보살핌으로 경성의 사범학교를 다녔다. 부친이 사망한 후, 살림이 쪼그라들었고, 모친마저 사망하자 집안이 거덜 났다. 마침 남포에 소학교가 생겨 교편을 잡는 바람에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했다.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다. 그것도 잠시뿐, 아내가 죽었다. 그는 실의에 빠져 술만 퍼마시다가 학교를 떠나 방랑했다. 반년쯤 지나 새 장가를 들고 새 출발을 했다. 다시 마가 꼈다. 불의의 사고로 네 달 동안 철장신세를 졌다. 출옥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외간남자와 정분이 나서 가출한 상태였다. 그는 비탄에 잠긴 나머지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그는 엉뚱하게도 삼층집을 계획했다. 기둥을 세우고 널빤지를 걸치고 멍석을 둘러막아 얼렁뚱땅 삼층집을 지었다. 말이 삼층집이지 원두막에 가까웠다. 그 삼층집을 아지트로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한 ‘동서친목회’를 조직하고, 그 목적달성의 일환으로 강연을 펼쳤다. 그의 기이한 행적은 일대에 쫙 퍼졌다. 우리가 만난 때는 그 즈음이다. 그 2개월쯤 후, 그 삼층집이 불타버렸다. 신성한 집을 신에게 되돌려 준 셈이다. 그의 용기와 자유로운 영혼이 가엽다. 마음이 무겁다. 보통문밖 짚더미 속에서 우물거리다가 장발을 한 채 돌아다니는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개구리 해부는 당연히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실험실’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표본실’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제의 눈을 의식하여 제목을 비틀었다. 세계평화를 부르짖는 김창억은 안중근의 ‘만국평화론’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지지했던 우리 민족의 대리인 격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울분과 염원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이 표본은 「날개」에서 ‘박제된 천재’로 부활한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분에도 작가의 뒤틀린 심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변온동물인 개구리 배를 갈라봐야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올 리 없다. 당시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먹던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자연주의 기법에 정통한 작가가 정확한 관찰도 없이 핵심적인 장면을 엉터리로 묘사했을 리 없다. 항간을 읽어달라는 복선이다. 작가는 청개구리를 불러내는 방식으로 일제에 쐐기를 박았다. 일제와 거꾸로 가겠다는 의도가 눈물겹다. 삼층집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염두에 둔 착상이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들의 나약하고 무기력한 정신상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지만 한발 물러나 빈정거리는 시니컬한 그들의 모습은 가련하다. 3·1 운동 이후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감안하여 허무주의 내지 무정부주의에 경도된 당시 지식인들의 성향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원하지 않고는 정말 돌아버릴 만한 상황이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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