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大邱

박방희

불쌍한 대구/ 남해에서/ 동해에서/ 서해에서/ 포획이나 당하면서/ 밥상에 오르거나/ 주안상에 올라/ 씹고 씹히는/ 아, 불쌍한 대구.

『허공도 짚을 게 있다』 (지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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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입이 커서 大口다. 입이 큰 대구는 잘 먹어서 덩치가 크다. 덩치가 큰 만큼 살이 많아 배고픈 시절에 좋은 단백질 원이었다. 맑은 국을 끓여 먹거나 매운탕을 요리해 먹는다. 볼때기는 찜뿐만 아니라 탕으로도 즐겨먹는다. 입 주변 근육의 쫄깃한 식감이 구미를 당긴다. 포를 떠 말린 것은 심심풀이 부식으로 그만이다. 대구는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생선이다.

대구를 토막토막 잘라 찌지고 볶고 삶는다. 때론 포를 떠서 말린다. 인간에겐 침을 흘리게 하지만 대구 입장에서 보면 기가 찬다. 밥상에 오른 대구를 쭉 둘러앉아 맛나게 씹어 먹는다. 꼭꼭 씹어야 제 맛이다. 그러고는 밥도둑이라며 도둑놈 누명까지 씌워 씹기도 한다. 주안상 대구도 매일반이다. 쫄깃한 게 술안주로 딱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술맛이 돈다. 대가리가 너무 크다고 씹는 소인배도 있긴 하다. 술자리가 파하면 비싸다고 씹는다.

남해에 놀던 대구는 멸치 소식을 전해주고, 동해에서 살던 대구는 독도의 파도소리를 들려준다. 서해에서 황사에 시달리던 대구는 누렇게 뜬 얼굴로 거품을 문다. 시인은 ‘대구’와 ‘씹다’의 同名異義, 중의적 의미에서 영감을 얻는다. 大邱의 시인은 이름 때문에 大口에 더 정이 간다. 大口에 빗대어 大邱에 대한 애정을 살짝 내비친다. 밥상과 술자리에서 씹고, 씹히는 大口는 大邱와 동병상련이다.

大邱는 역사와 전통이 유구하다. 대구는 신라의 중심세력권이었고, 고려를 이끈 두뇌를 배출한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엔 인재의 보고였다. 유림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위기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켜낸 추로지향이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깃발아래 일제의 흉수에 맞서 조막손을 맞잡고 허리끈을 졸라매었다. 해방 공간에서 ‘남한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공산주의자들이 준동하긴 했지만, 6·25땐 공산화를 막아내는 선봉에 섰다. 전후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앞장서서 부국을 일궈낸 위대한 지역이다.

최근 대구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듯하다. 총선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결과를 보여준 이유로 눈총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 민주당이 한명도 당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못 볼 걸 본양 대구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 어떤 지역의 사람이 비슷한 성향을 갖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어떤 지역에서 특정 정당 지지색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도 흔히 있다. 미국이나 영국의 특정지역의 보수·진보성향 비율은 선거 때마다 일정한 양상을 보인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 지역의 정체성이자 신성한 선택이기 때문에 오히려 존중해준다.

호남의 선택은 늘 극단적이다. 역대 선거결과를 보면 잘 드러난다. 보수당은 호남에서 후보조차 내기 어렵다. 득표율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한쪽에 쏠려있다. 대구는 그완 또 다르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내용면에서 민주당이 당선과 다름없는 득표를 한 곳이 많고, 기초의회엔 다수당이 된 곳도 있다. 그런대도 더 편향적인 곳은 눈 감고 멀쩡한 대구에만 딴지를 거는 태도는 부당하다. 선거결과를 두고 비난해선 안 된다. 유권자의 선택은 자유롭다. 타 지역의 선택과 다르다고 째려보고 손가락질한다면 선거는 왜 하는가.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사를 존중할 때 비로소 뿌리내리고 꽃피는 나무와 같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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