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육십이 넘은 어느 노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혼한 그날, 담당 변호사와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주문한 음식이 통닭이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주문한 음식이 오자 통닭의 날개 부위를 찢어 아내인 할머니에게 주었다. 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변호사는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는 몹시 화를 내며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묻지도 권하지도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남편을 비난했다. 이에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를 항상 양보하고 권했다며 역정을 냈다. 결국 노부부는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도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지난날의 배려가 자신의 이기적 생각임을 깨닫고 전화를 걸어 보지만 화가 난 할머니는 받지 않았다. 다음날 할머니 역시 자신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려 할아버지에게 전화하지만 남편의 목소리 대신 낯선 사람으로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최근 SNS를 통해 읽게 된 노부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늘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중심에 두고 타인에게 베푼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 속 할아버지의 모습이 흔한 우리들의 사랑과 배려의 방법인 것이다. 내가 아끼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줄 때 상대방은 기뻐할 것이며 고마워 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말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란 이야기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여우와 두루미는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고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한다. 자신이 아끼는 버섯스프를 끓여 넓적한 접시에 담아 두루미에게 담아내는 여우의 마음은 분명 선의의 행위임이 분명하다. 자신이 정성껏 끓인 음식임을 강조하며 많이 먹길 권하는 여우의 모습에서 노부부의 이야기 속 할아버지 얼굴과 오버랩된다. 부리가 뾰족한 두루미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접시만 찍다가 분노하며 돌아간다. 할머니의 분노가 두루미의 분노로 치환되는 시점이다. 여우의 선의가 두루미에게는 수치와 조롱의 악의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두루미는 복수를 결심한다. 훗날 두루미는 여우를 초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우는 초대에 응한다. 즐거움을 안고 가는 여우를 볼 때 지난날 두루미에게 행한 자신의 행위가 배려임을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호리병 속 생선튀김을 마주한 여우는 결국 먹지 못해 냄새만 맡다가 돌아가고 둘은 친구가 아닌 생면부지의 관계가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함께 살아온 세월동안 아내에게 먼저 내어준 할아버지와 아끼는 버섯스프를 친구에게 내어준 여우의 배려와 선의는 어쩌면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 속 행위자에게 안타까움과 심지어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중심성’과 ’합리적 차등’으로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이기적 배려는 결국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서로간의 능력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선의는 분노를 몰고 온다.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에 대한 범위 선정은 총선 전부터 뜨거웠던 논쟁이었다. 소득 하위 70%로 결정한 정부와 총선과정을 통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100%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여당의 불협화음은 기재부 장관의 경질론으로까지 불거지는 듯 했다. 지원금 액수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겠다 던 미래통합당의 총선 후 입장변화는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추경을 통해 전체 국민을 그 대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가정과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긴급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합리적 차별과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가 명확히 잡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 일회성 지급으로 경제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단순한 액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로 하는 국민 개개인 그리고 직업군의 상황을 정확히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경제란 살아있는 유기체와 다르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괴사되고 있는 부문을 우선적으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자기중심적 생각이 결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배려가 될 수 없기에 범정당적 합의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을 위한 배려와 존중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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