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에 입학한 김혜수(가명)씨는 고교시절 동경해 온 대학 생활이 단순한 꿈이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입학의 기쁨을 안은 채 나름 대학생활 설계를 마쳤다. 친구들과 어울려 캠퍼스를 걸으며 낭만도 즐겨 볼 요량이었다. 코로나가 그의 꿈을 앗아갔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아주 우연하게도 삶의 여유 기회를 코로나로 인해 맛보고 있다. 쉬어가는 시간대를 찾은 것이다.

김혜수씨처럼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말 그대로 쉴새없이 공부에만 매달렸다. 대학 진학 후에도 학점관리, 스팩준비, 취업준비 등으로 인해 숨 쉴 틈이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교수와 직원 역시 마찬가지다. 꽉 짜여진 일상에 매몰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19는 대학에도 생명과 연관된 ‘생존’이라는 과제를 던져 모든 시간을 정지시켰다.

발생초기 사상초유의 사태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고 한편으로 불안해 했다. 주변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졸업식, 입학식 등이 취소되고 개강조차 미뤄지자 매일의 시간을 초조하게 보냈다.

온라인으로 개강은 했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자 학생, 교수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이 안정되고 새로운 수업 방식에 적응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일상의 변화도 찾아왔다. 등·하교시간과 강의실 이동 시간, 수업 간 대기 시간은 사라졌다. 등교를 하지 않으니 준비시간도 필요없게 됐다. 그 만큼 여유가 생긴 셈이다.

중간고사도 없고 성적도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로 산정하게 되자 긴장이 줄고 경쟁심리 대신 여유가 생겼다. 그리 바빠하지 않아도 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여긴 것들도 후순위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정상이라 생각했던 비정상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됐다.

수업방식과 소통방법에서 큰 변화가 발생 했다.

비대면 수업에 활용된 다양한 수업 방식들이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많다. 출석수업보다 실시간 화상 수업이나 동영상 수업이 수강생이나 강사 모두에게 시간적·경제적인 면에서 효율성이 크고 편리하다는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토론이나 과제 수행은 개별 학생들과 일대일로 소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져 침묵하던 다수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

또 세계적 차원에서 유사강의들이 실시간 비교되기 때문에 강의능력이 부족하거나 내용이 부실한 강좌는 퇴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자격증이나 시험 준비와 관련된 교과목의 경우 우수한 인터넷 강의 외에는 존속될 수 없다.

인터넷 강의 확대는 학교 간 비교로 연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의는 대학이 제공하는 상품으로 가격에 비해 상품의 질이 낮으면 소비자가 외면 당한다. 등록금 환불 요구가 대표적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교수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업무역량을 가진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이 구분되고 있다. 경영이 악화된 대학은 필수 인원만을 유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역량을 중심으로 재편을 시도할 전망이다. 학생들 역시 팀의 일원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위주로 평가되고 경쟁도 심화된다.

코로나는 국내 대학의 평준화 진행에 한몫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들에서 개설되는 강좌들의 공유가 확대되고, 세계 각 지역대학들과의 인터넷 강의 교류협력이 증가하는 계기가 활발히 진행된다. 경제악화까지 고려한다면 비용대비 효용 면에서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고 단가상정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의 등록금 인하요구가 지속된다면 대학은 평준화되는 방향으로 구조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의 취업 트렌드 변화도 눈여겨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불안정을 지켜본 학생들은 진로 선택에서 보다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게 된다. 여유와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한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이나 창업보다는 안정을 선택기준으로 삼는다. 자격증을 가질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거나 공무원 등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직종을 선호하게 된다.

캠퍼스 라이프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집단적인 모임이 사라지고 있다. 교직원의 경우 퇴근 이후의 부서모임은 물론이고 삼삼오오 모이던 소집단의 교류도 사라졌다. 재택근무, 도시락 등 가족중심의 생활습관이 직장으로서의 대학공동체의 결집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학생들 역시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학과나 동아리 모임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개별화가 확대된다. 대학공동체 내의 관계 망이 약화될 것이고 학과, 단과대 중심의 현행 대학구조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융합학문 영역이나 학과중심으로의 재편을 재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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