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능히 구분해 행동하는 전략을 능굴능신이라고 합니다. 유비는 이에 능했습니다. 유비처럼 자신을 굽혀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각한 좌절을 겪은 후 냉정을 유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유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격을 받은 후 신속하게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자오위핑 저, 위즈덤하우스 간)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언쟁을 하지 말라’는 옛 말이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이 왜 나온 걸까. 삼국지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삼국지는 이런 인물상을 통해, 사건들을 통해 주는 의미있는 교훈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 속의 유비는 무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전장에서의 지휘력 또한 평범하다고 오나라 육손은 유비를 평가할 정도였다. 제갈량처럼 지략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고, 조조처럼 천재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지략도, 용맹도 부족한 유비가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뭘까.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를 쓴 자오위핑은 삼국지 강의의 대가로 꼽힌다. 이 책도 중국의 국영방송 CCTV가 기획한 인기 인문학 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강연한 ‘삼국지’ 인물 강의의 유비 편을 엮은 것이다. 자오위핑은 유비의 성공비결을 능굴능신(能屈能伸)의 능력이라고 본다. 능굴능신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아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수많은 패배에도 위기를 이겨낸 유비만의 처세술인 셈이다.

유비가 가진 ‘능굴(能屈)’의 능력은 특별했다. 그는 조조에게 패한 여포와 연합을 맺어준다. 하지만 원술과 내통한 여포로 인해 유비는 결국 서주 땅을 잃게 된다. 어느 정도 회복한 유비는 자기를 배신한 여포에게 투항이나 다름없는 화친을 맺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여포와 힘을 합쳐 원술을 이기자는 것이었다. 원술이 여포를 회유했듯이 유비도 여포를 매수한 후 원술을 공격해 결국 목적을 이뤄냈다.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에게 복수심을 내려놓고 항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비는 장래를 위해 잠시의 굴욕을 참았다. 능굴(能屈)을 실천한 것이다.

능신(能伸) 또한 유비의 철학임을 보여주는 예도 있다. 유비의 도움으로 평안을 찾은 서주(徐州)의 주인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넘겨주자 다른 사람을 추천하며 사양했다. 그 후 동네 유지들이 힘을 모아 유비를 설득하자 그는 그제서야 수락했다. 유비는 자리를 준다고 덥석 받지 않았다. 그릇이 되지 않은 사람이 넘치는 자리에 앉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대신 큰사람이 되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되는 법이다. 가진 게 없었던 유비는 명성과 지명도를 쌓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있었다.

능굴과 능신의 적절한 사용, 고개를 숙여야 할 때와 적극 나서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유비의 장점이었다.

영웅은 위기에서 난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일 때 드러나는 법이다. 위기에서 빠져나오려면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유비처럼 냉정하게 생각하고 신속하게 태도를 바꿀 때다.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미래통합당은 상대인 여당을 안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자신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다. 체면과 자존심으로 뭉쳐있음을 모른다. 지금은 이 둘을 모두 내려놓을 때인 줄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로부터 왜 외면받고 있는지를 알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국민들 앞에 철저하게 고개를 숙일 때다. 유비로부터 유연하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굴과 능신을 배웠으면 싶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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