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언어는 그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담아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신자가 발신자의 신호를 전달받으면 수신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 같아야만 한다. 원 개념이 수신자마다 다르게 해석된다면 원만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학문에서 용어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어떤 학문 분야에서 각종 용어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그 학문의 개략적인 내용을 소화했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용어는 일상적 사회생활에서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비록 용어가 정확히 정의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발신자가 그 용어의 정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용어를 오용한다면 오해나 곡해를 피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제대로 된 국어지식은 학문에선 물론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다. 평등한 기회와 공명정대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가 생명인 입법·사법·행정에서 올바른 용어의 선택과 사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권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막말 파문과 유명인사들에게 통과의례처럼 빈발하는 설화도 언어 오용의 파편이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예민하게 얽혀있는, 공적인 업무를 다루는 공인은 언어사용에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

재난극복을 위해 국민에게 지급되는 금품에 대한 용어 논란이 화제다. 중앙정부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재난지원금이라 부르는 것을 경기도지사만 유독 재난소득이란 용어를 고집한다. 재난지원금의 일반적 정의는 재난 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금품이다. 이러한 정의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다. 그 반면, 재난소득은 재난 시 국가로부터 국민이 얻는 금품으로 풀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상식일 것이다. 그렇지만 재난소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없고 부가적 설명이 요구된다. 재난기본소득을 줄인 표현으로 본다면 조금 더 명확해 보이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재난 시 위난에 처한 국민이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목적으로 국가로부터 받는 이전소득이라는 해석은 난해하다. 현재 사안을 코로나로 인해 위기에 처한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마중물로 행하는 한시적 지원책이라고 보면 ‘재난지원금’이 상식적이고 무난한 표현이다.

‘지원’이라고 하면, 정부가 주체고 시혜나 복지의 의미가 강하며 일회성 휘발성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반면, ‘소득’이라고 하면, 국민이 주체고 권리라는 의미가 들어있어 당당하고 미래지향적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재난소득을 고집한단다. 허나, 지금 상황에 맞는 상식적 표현을 써야 국민과 객관적 소통이 가능하고, 미래세대에 올바른 해석을 기대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재난을 당하여 휘발성 있는 일시적 마중물을 지원하자는 것일 뿐 아니라 지금 국가가 주려는 돈은 시혜나 복지임에 틀림이 없다. 경기도지사의 주장대로라도 역설적이지만 ‘지원금’이 꼭 맞는다. 게다가 위난에 처한 국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중물로 주는 금품이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이기도 하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국민은 주권을 가진 국가의 주인이고,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은 당당하다. 이렇게 보면 재난지원금이라는 표현 속에 재난기본소득의 주장 근거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융통성이 존재한다.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을 대리한다는 주장에 조금 어폐가 있다. 정부는 대리이론보다 위임이론으로 설명하는 편이 더 유용하다.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라고 본다면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표가 아니라 ‘포괄적 수임자’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주인이 모든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에게 청구권이 발생하려면 구체적 권리를 공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국민이 재난소득을 청구할 수 있다는 설익은 주장은 관념적이다.

언어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건물을 빌려주는 쪽에선 임대지만 빌리는 쪽에선 임차다. 예산을 집행하는 국가는 지원금이지만 돈을 받는 국민은 소득이다. 이러한 언어생활을 권리·의무관계로 보는 시각은 이념적 편향성이다. 정부가 재난 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국민에게 긴급히 금품을 주는 것은 재난지원금이고 국민에게 그 지원금은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이 국가로부터 기본생활비를 상시적으로 받는 개념이다. 재난기본소득이라 하려면 재난 만료 때까지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국민 1인당 20만 원 정도 일회성으로 받는 돈을 재난기본소득이라 고집하는 것은 난센스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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