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이제야 비로소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계절의 여왕인 5월을 제한적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제 10명 내외 수준으로 억제되면서, 일상 복귀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5월말까지는 순차적인 개학은 물론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스포츠 관람시설, 국공립 극장 등 실내외 분산시설과 밀집시설도 생활방역으로 정상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국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올해 2/4분기가 경기저점이 될 것이고, 연간으로는 역성장까지도 모면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로 다음과 같다.

우선 생활방역 전환과 2차 추경의 국회 통과로 5월부터는 그동안 침체된 소비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준비에 한창인 3차 추경이 오는 6월 초부터 시작되는 21대 국회에서 조기에 통과된다면 고용 안전망이 크게 강화되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투자가 증가하는 등 경기부양효과가 3/4분기부터는 본격화될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3/4분기 이후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점차 진정되면서 수출 경기도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고용과 경기 버팀목이 되어왔던 제조업은 물론 해운, 항공 등 기간산업 전반의 위기도 조금씩 완화되어 우리 경제에 주는 부담을 크게 줄여줄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거리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화된 고용안전망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자. 고용유지 지원책이나 청년층 공공일자리 확충 등은 위기극복을 위한 단기대책으로 재정 리스크도 감수하겠다는 강력한 정책의지가 없는 한 시장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할 때까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재난기본소득과 생활방역 시행으로 그나마 좀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좋은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고용 증가와 가계소득 개선 없이는 지속적인 소비 개선세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출도 예외는 아니다. 수출보다 수입이 크게 줄어 불황형 흑자를 보일 때는 경제성장 기여도가 플러스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반대의 경우가 지속되면 최악인데 지금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수익을 쫓아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다는 생존이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민간 기업의 투자가 갑자기 살아나기도 참 어려워 보인다.

결국에는 올해 역성장을 하든 그렇지 않든 내년 이맘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지금보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이전보다 더 치열해진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고, 기업들은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든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든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위기극복이라는 임무는 완수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경제를 정상적인 궤도로 되돌려 놓기 위한 정책 고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 엘리엇(Thomas. S. Eliot)이 1922년에 발표한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 구절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고 시작한다. 이는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인들의 황폐화된 정신세계를 그린 것으로 확대해석 하자면 20세기 들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묘사했다고 한다.

우리 경제가 위기 후 얼마나 강력한 재생력을 보여 줄 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엘리엇의 시가 노래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코로나19 사태로 황폐해진 우리 국민들의 삶과 경제 기반을 되찾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길 절실히 바라는 바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되었지만, 잔인한 4월은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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