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청담』 (일조각,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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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이 아닌 지상, 원죄를 진 인간은 지상에서 고된 삶을 꾸린다. 백열등이 켜질 무렵, 고단한 하루 일과를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60년대 초반, 시골과 달리 도회지는 전기가 들어와 백열등을 밝혔다. 정원과 현관이 있는 반양옥을 지나면 들깐이 딸린 부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판잣집이 나타난다. 서민들의 인생살이가 그 안에서 복닥거린다.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다. 마침내 밖으로 바로 방문이 드러난 단칸 오두막집 앞에 선다. 가난한 시인의 삶은 고달프다.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 신발이 문밖 지상에 나란히 놓여있다. 지상은 땅 위라는 본래적 의미와 더불어 아내가 천상으로 갔음을 암시한다. 아홉 마리 강아지는 자식들이다. 금슬이 좋았다. 아버지는 오십대 홑몸이다. 신발 크기는 ‘십구 문 반’, 신발 크기를 문수로 표기했다. 1문이 24㎜면 ‘십구 문 반’은 468㎜다. 요즘 성인 남자 255㎜, 성인 여자 230㎜ 정도가 보통이다. 제대로 먹지 못한 60년대 초, 성인 남자 248㎜, 성인 여자 220㎜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몫까지 합해서 ‘십구 문 반’이다. ‘지상’과 ‘십구 문 반’은 천상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을 녹여낸 상징이다. ‘육 문 삼’은 151㎜. 막내는 겨우 대여섯 살 남짓,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다. 아홉 켤레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대유다. 크고 작은 아홉 켤레 신발을 보면 피로가 가시고 미소가 절로 인다.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의 고달픔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코가 납작한 조그마한 신발이 눈에 들면 마음이 급해진다. 커다란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고 방문을 연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버지를 반긴다. 막내가 다리에 매달리고 아이들의 따스한 눈길이 쏟아진다. 막내는 식은 풀빵 한 봉지를 받아들고 춤을 춘다. 첫째만 온 걸 먹고 나머진 반씩 나눠 먹는다.

아내가 없는 고달픈 세상에 아버지는 혼자 자식들을 돌본다. 냉엄한 지상에 남겨진 원죄를 홀로 감당한다. 그래서 십구 문 반을 신는다. 온갖 굴욕을 참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며 험한 세상을 헤쳐 간다. 책임져야 할 자식들이 있어 포기하거나 굴복할 수 없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는 원동력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지상에 맡긴 자식들에게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 실망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설퍼 보이지만 아이들 앞에선 듬직하다. 아버지의 미소는 자식들에게 자신감과 편안함을 준다. 사랑과 용기를 충전해주는 자식들이 있기에 아버지는 결코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다. 아버지는 슈퍼맨이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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