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골프를 배울 때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말이 ‘힘을 빼라’다. 골프 스윙을 하면서 힘이 들어가면 체중 이동이 잘 안되고 뒤땅을 치거나 에러 샷이 나온다. 초보자는 거리를 내고 싶은 욕심에 골프채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채를 휘두르는 경향이 많다. 힘이 들어가면 몸이 경직되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정확성이 떨어지고 속도와 파워도 줄어들어 공도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힘 빼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숙달되고 단련돼야 힘이 빠지고 정확한 스윙 동작이 나온다.

테니스나 축구, 야구 등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다. 테니스도 강한 스트로크를 하려면 팔에 힘을 빼고 부드러운 스윙을 해야 한다. 축구에서 강한 슈팅을 하려면 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차야 한다. 배구의 강 스파이크도 부드러운 몸놀림에서 나온다. 힘이 들어가면 똥볼과 파울볼이 나오는 등 미스 샷을 하기 마련이다. 투수와 수영 선수도 어깨에 힘을 빼야 속도가 나온다. 유도나 태권도 등 격투기도 힘을 빼야 제대로 된 동작과 타격이 가능하다.

바이올린, 대금 등 악기를 배울 때도 힘을 빼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힘이 들어가면 몸이 굳고 바른 자세를 갖추지 못해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글쓰기도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힘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써야 좋은 글이 나온다. 글쓰기와 관련, 시인 박노해는 ‘긴장하면 굳어지고 굳어지면 무거워지는 법 그러니 먼저 힘을 빼라’고 했다.

-운동과 악기, 힘들어가면 성공 못해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 이후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소환’됐다. 민주당이 당선인 워크숍에서 초선 당선인들에게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실패 사례 기록 책자를 배포했다. 이 대표는 앞서 민주당의 총선 선대위 해단식과 당선인에게 보낸 서한에도 이를 언급했다. 이 대표는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이 승리에 도취, 겸손하지 못한 탓에 18대 총선에서 81석으로 추락한 사례를 들며 승리에 자만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힘을 빼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실패 사례 책자에는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후한서(後漢書)에 공자의 말을 인용한 데서 유래됐다. ‘수가재주 역가복주’는 정치인들이 민의의 중요성을 일깨우거나 비유할 때 애용하는 말이다. 이로운 것이 때로는 해가 될 수도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평소에 장차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곤란과 위험에 대비해 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민주당의 실패 사례 복기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겸손한 거대 여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제어한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굳셈은 도둑이다. 약함은 사람을 돕는 것이고 강함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병법서인 ‘육도삼략(六韜三略)’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 낮춰야 국민 보여, 정치도 힘 빼야

모든 운동과 악기를 다룰 때도 많은 훈련과 연습을 해야 힘이 자연스럽게 빠지듯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성공과 성취에 안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오만과 독선적 행동을 하다가 험한 꼴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겸손과 배려, 양보를 잊은 때문이다.

정치도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수련해야 힘을 뺄 수 있다. 자신을 낮춰야 국민이 보인다. 그래야 표가 나온다. 국민을 먼저 생각했다면 조국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4·15 총선 이틀 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사악한’ 검찰과 언론을 손보겠다고 공언하는 등 안하무인격 행동으로 공분을 샀다. 차기 대통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인사가 ‘이천 화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가 무례한 언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평소 온화하고 순리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힘을 빼지 못해 ‘깜냥’을 의심받는 상황이 됐다. 정치 7단쯤 되는 이에게도 힘 빼는 일은 쉽지 않은가 보다. 과연 앞으로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힘을 뺄 수 있을까. ‘K방역’ 성공에 취한 사이 코로나19가 다시 튀어나왔다. 겸손과 절제가 요구되는 시기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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