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호저(豪猪)의 지혜

발행일 2020-05-13 16:43:0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공존을 위한 호저(豪猪)의 지혜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코로나19 집단감염 쇼크가 또 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일상생활과 경제사회적 활동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면서 감염예방활동을 지속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정부의 방역지침이 전환되자마자 일부 유흥시설에서는 대규모 집단감염현상이 발생했고 헬스장과 같은 집단사용시설에서도 2차감염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가 서둘러 관할지역내 모든 유흥시설의 영업을 중단시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 기대감 대신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수개월 전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를 맞았다. 등교를 앞두고 있던 학생과 학부모, 교육기관 등에서는 집단감염 우려로 등교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일부 대학은 이미 대면수업 연기를 결정했다. 여기에 정상근무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조금씩 온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지역 소상공인 경기도 갑작스러운 새벽 댓바람에 난데없이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경제에도 단기적으로는 이 이상의 악재는 없을 것 같다. 국내외 주요 전망기관들의 우리 경제에 관한 낙관적인 기대가 막 나오기 시작한 이 때에 집단감염이 재발생했다는 사실은 거의 재앙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이런 낙관적인 전망이 다른 나라들이 보여주지 못한 한국만의 특수성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번 일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공적으로 이끈 높은 시민의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사회적 활동의 조기 정상화라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한 낮 해변의 포말처럼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허술함을 보면 위기에 봉착한 개인이나 기업, 사회가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데, 마치 지금은 호저(豪猪) 또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호저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말로 산미치광이라 불리는 호저는 몸과 꼬리의 윗부분이 가시 털로 덮인 열대 포유류로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많이 닮았는데, 그가 1851년에 쓴 ‘여록과 보유(Parerga and Paralipomena)’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추운 겨울날 호저 여러 마리가 온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 엉켜 붙어 있었다. 그러자 가시털이 서로를 찔렀다. 그들은 떨어져 앉아 있어야 했다. 붙었다 떨어졌다 반복하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그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게 최선책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인간이라는 호저들을 서로 한데 묶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서로의 가시에 쉽사리 화합할 줄 모르는 각자의 천성에 찔려 상처입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적당한 간격 유지야말로 공존의 유일한 조건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정중함과 예절의 표준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염세주의자이자 여성혐오주의자였던 저자의 자신감 즉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 싫고 타인에 의지하지 않아도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공존 또는 공생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근래에 와서는 가족이나 친지, 이웃, 친구 등 친한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기 싫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딜레마를 표현해 주는 것이기에 너무 비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호저의 거리두기처럼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과 노력이 자신의 안위는 물론 타인의 생명을 보호함으로써 공존과 공생의 장을 만들고, 나아가 정상적인 경제 및 사회 운영을 가능케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아야 할 때다.

역설적이긴 하나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가시 털 대신에 공존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공생의 낙원을 즐길 수 있도록 생존을 위한 개인의 이기심 발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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