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인정하는 합리적 보수의 길

주호영 통합당 신임 원내대표가 당선 일성으로 ‘의석수의 현실을 인정’한다고 자복했다. 그러면서 여당에 협조할 것은 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과감히. 야당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무조건 반대나 장외투쟁 대신 합리적으로 협상을 통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거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일하는 국회’ 제안에 찬성한다는 화답을 한 것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라’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주호영 의원이 압도적 표차로 통합당 원내대표에 당선돼 영남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는 이번에 5선의 고지에 올랐지만 지역구를 수성구갑으로 바꿔 출마하는 곡절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의 대선 잠룡으로 불리는 김부겸 후보를 꺾음으로써 스스로 대선후보 반열에 오르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20대에는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에서 탈락하고 보수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쳐냄으로써 웰빙 국회의원이라는 비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지난겨울 대구의 한 열린 행사장에서 수행원을 멀찌감치 두고 혼자 민심 탐방하던 주 의원을 만나 다짜고짜 물어봤다. 4선 의원이면서 그렇게 존재감이 없느냐고. 당시에도 한국당(통합당 전신)의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역할을 맡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전혀 불쾌해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자신이 최고위원이나 원내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계제가 못 된다는 변명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그는 4선의 무게감을 보여줬다. 전 의안 필리버스터를 제안하고는 기저귀를 찬 채 제1주자로 단상에 올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의 폭주를 조목조목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합리적이면서 온건한 이미지에서 강단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각인했다.

특히 영남에서는 주 원내대표의 이런 기운이 보수 정당의 기존 이미지에서 탈각할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가 크다. 그가 이끄는 통합당은 보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국민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있다. 아직도 총선 참패의 현실을 당선자나 낙선자는 물론 투표를 한 유권자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선거 부정 주장이 대표적이다.

통합당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현역 의원 중에는 아직도 투표결과를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까지 나를 2번으로 알고 있었다”는 착각이 그 중 하나다. 그들은 이번 총선이 코로나19로 유권자 직접 접촉이 줄어들어 후보를 알릴 기회가 줄어든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지역에서는 많은 현역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수성구을의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 남짓의 득표율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로 유권자와 대면 선거운동을 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면 현역 의원이 지명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터. 그렇다면 ‘2번 착각’은 유권자가 아닌 자기가 착각한 것이다.

‘통합당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이런 보수 정치권은 회생할 수도 없다’는 여당 정치인의 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결국 유권자들을 우습게보고 하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당 공천이 결정되자 많은 지지자들이 기존 조직 대열에서 이탈해서 당 공천 후보에게 줄을 섰다는 사실을 그들만 몰랐다는 말인가.

주호영 신임 통합당 원내대표는 아직도 투표부정과 개표부정을 이야기하는 당 내 분위기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명확한 선긋기도 필요해 보인다. 투표 종사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투표장이나 개표장에서 그 과정에 참여해보면 3중, 4중, 그 이상의 촘촘한 감시망으로 투표나 개표에 부정이 개입할 가능성이 불가능한지 알게 될 것”이라 증언한다. 그런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부터 극복하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출발선이 주 원내대표가 되어서 합리적 보수 정당의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첫걸음이고 보수의 자존심을 세우는 약이고 통합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길이다. 이경우(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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