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시인 천영애
수없이 회자되면서도 정작 본 사람은 많지 않은 영화 가운데 이 영화도 있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왕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에 영원히 봉인해 버린 말이다. “모르죠?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차우역을 맡은 왕조위는 리첸역을 맡은 장만옥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렇게 묻는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2년의 홍콩인데 이 해는 왕가위 감독이 홍콩으로 넘어온 해이기도 하다. 60년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1966년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으니 왕가위 감독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때이기도 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넘어와서 홍콩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홍콩에서는 작년에도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기 위한 시위가 일어나 공항까지 마비되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 또한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였다.

왕가위 감독이 이 영화의 제목을 ‘화양연가’라고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차우와 리첸의 사랑이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었다 해도 화양연화라 할 만큼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미완의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여자이면서도 리첸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었다. 장만옥이 입고 있던 치파오의 매력은 무채색같은 영상미에 더해져 매력을 더했다. 그녀의 몸 자체가 언어가 되었다. 국수 그릇을 들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던, 호텔에서 차오의 사랑을 거절하던, 찻집에서 서로의 배우자의 불륜을 암시하던 모든 모습들이 말보다 더 간절한 말이 되었다. 섹시하면서도 우아한 치파오는 장만옥의 매력을 더할 수 없이 빛내 주었으며 그 자체 또한 화양연화였다. 사람의 몸이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장만옥은 옷으로 자신의 말을 하면서 정작 입은 열지 않는다. 때로는 허공을 보면서, 때로는 가만히 웃는 웃음으로, 또는 표정 없이 흘리는 눈물이 말이 된다. 그런 절제미는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으로 애타게 하지만 사랑을 끝낸 그녀는 다시 건조한 나날로 되돌아간다.

좋은 영화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영화의 장면장면마다 흘러나오는 굵직한 첼로음들이 그들의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을 암시한다.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Nat King Cole이 부른 ‘Quizas, quizas, quizas’는 ‘아마도’ 란 뜻인데 탱고풍의 이 음악이 영화 전체를 허망하게 만든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경쾌해서 오히려 쓸쓸한 음악도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는데 매번 장만옥의 치파오의 매력에 빠져서 지루한 줄을 몰랐고, 선을 넘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사랑에 애가 탔고, 그리고 음악이 좋았다. 영상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어도 머리 속에는 영상이 흘러갈 정도이다.

화양연화는 BBC가 선정한 ‘21세기 세계 100대 영화’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작품성에서 인정받은 영화다. 또한 2000년 제53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최우수예술성취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영화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충환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