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향기 속에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향긋한 꽃내음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새벽에 집을 나서 산소 찾아 올라가는 길, 짙은 안개가 볕에 걷히자 은은한 향내가 산길에 퍼져있다.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피니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이 조상님 산소 앞 둑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반기는 듯하다. 코로나19에 별일 없었느냐고 안부를 묻는 것 같다.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고 한참을 들이켜 본다. 언제 그곳에 피어나 우리들이 찾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가. 찔레꽃의 꽃말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더니. 우리를 “보고 싶다”. “그립다” 하는 이들이 계신다고 고하는 것 같다.

구정설이 지나 시작한 코로나19, 정신없이 번져가는 통에 벌초도 성묘도 제때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꼼짝없는 불안에 떨기만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한식도 지나고 이제 오월도 중순이다. 내일모레면 막내아들의 개학이다. 미루고 미루었던 등교 일정이 고3이라 어쩔 수 없단다. 입시가 코앞이라 더 미룰 수 없다고 하니 두고 볼 수밖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해외에서 대학원 공부하던 아들은 그곳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안 좋아져 귀국하였다. 공항에 내려 특별실이 마련된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왔다. 그곳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전신 방호복을 입은 택시를 타고 혼자서 짐 가방을 끌고 비어 있는 외딴집으로 갔다. 가족들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 채 격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래저래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이다. 코로나19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도 또 어느 구석에 숨었다가 튀어 오르니, 마치 두더지 때려잡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손으로 불안을 헤아리다가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고자 산소로 향했다. 학생도 격리자도 모두 무리 없이 무사히 넘겨서 과정을 잘 마무리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난지원금만큼이나 나가는 비싼 예초기를 샀다고 자랑하는 동생네와 함께 초록의 들판을 지나 산소로 향했다. 산소로 오르는 길은 수풀로 뒤덮여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구부터 예초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간다. 사방에 피어난 이름 모를 색색의 꽃들도 반가운 듯 향긋함으로 답한다. 잘린 풀에서 배어 나오는 풀냄새가 오랜만에 생기를 돋운다.

산에 오르자 저 멀리 푸른 들판 너머 풍경은 평화롭게 다가든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집에서 은둔하며 격리 생활을 하고 있을 이들의 눈빛이 그 위에 어른어른 겹친다. 하얀 찔레꽃은 산소를 에워싸고 피어나 장미보다 더한 향기를 전한다. 꽃향기에 취하다 보니 땀내 젖은 어머니의 품이 못내 그립다. 문득 어느 시인의 찔레꽃이 들려오는 듯하다

‘닮은 듯 닮은 얼굴 누군가 그려 보니/ 흰 수건 동여매고 밭 매던 내 어머니/ 살며시 그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우누나/ 엄마 품 그리워서 턱 괴고 바라보니/ 천사의 웃음으로 한없이 웃어 주신/ 찔레꽃 향기로 오신 보고 싶은 어머니"

향기로운 오월을 장식하는 꽃 중에 찔레꽃도 한 몫을 하는 요즈음이다. 산소를 찾아 오르는 자식들에게 그리움을 속삭이듯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찔레꽃, 때 묻지 않은 수수함에 더 마음이 간다. 자리를 가리지도 않고 비탈진 언덕에 피어나 온화한 빛깔로 사랑을 전해주는 어머니의 꽃, 그 신중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엄마의 향기는 다시 찾을 길이 없지만 은은한 찔레 향기에 취해서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냄새를 더듬어 볼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언택트 시대에도 마음 속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주말 오랜만에 나들이하러 다녀온 지인은 그곳은 코로나19와는 상관없는 동네인 것 같더라고 하였다. 재난지원금으로 부모님 모시고 외식하러 멀리 남쪽으로 갔더니 식당마다 예약대기표를 받을 정도로 사람이 붐비더라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지금 확진자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잔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또다시 살아나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리라.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꼭 하고 다니고 무엇보다 손 씻기를 철저히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가능하면 덜하고 멀리하는 것이 나를 지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적당한 거리 유지로 버티기를 잘해야 하리라.

붉은 황토 흙구덩이나 비탈진 언덕배기에서도 여유로운 자태로 의젓하게 버텨서 향기로운 꽃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찔레꽃처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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