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키우고 아내는 고아요. 뭘? 도라지||1000일의 정성으로 만드는 도라지 가공품 면

▲ 김태준 대표가 2년근 도라지를 보여주고 있다.
▲ 김태준 대표가 2년근 도라지를 보여주고 있다.
‘BYC와 무진장을 아십니까’

BYC는 경북의 봉화(B)·영양(Y)·청송(C)을 지칭하고, 무진장은 전북의 무주, 진안, 장수를 말한다. 이를 우리는 ‘오지 트리오’라 부르고 오지의 대명사처럼 쓴다.

사람들은 오지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깊은 산 속과 청정함을 떠올린다. 봉화군 농산물의 공동브랜드가 ‘파인토피아’인 것도 청정함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 김태준 대표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도라지 밭에서 자라는 2년근 도라지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김태준 대표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도라지 밭에서 자라는 2년근 도라지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청정함의 대표지역으로 알려진 봉화에서 도라지를 재배하는 청년강소농을 만났다. ‘산아농부’의 김태준(34) 대표는 봉화군 일원에서 도라지를 재배하고, 부인 박승희(32) 대표는 영주에서 도라지를 가공하는 ‘도라지미’를 운영한다. 부부는 3만3천여㎡의 도라지와 6천 600여㎡의 생강을 재배, 가공해 연간 5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 산아농부의 귀염둥이인 ‘산아’가 잘 자란 도라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산아농부 블로그캡처)
▲ 산아농부의 귀염둥이인 ‘산아’가 잘 자란 도라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산아농부 블로그캡처)
농장 이름인 ‘산아농부’는 온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도라지미’는 산아농부가 키운 도라지로 만드는 맛있는 먹거리를 뜻한다.

◆신혼부부의 귀향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왜 고향으로 들어왔을까’, ‘도시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는 물음이 한동안 마을을 맴돌았다.

▲ 잘 자란 약도라지 3년근이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잘 자란 약도라지 3년근이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신혼부부가 갑자기 도라지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왔으니 주변에서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의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결혼을 하고 돌아서기 무섭게 귀농을 하겠다는 데 어느 신부가 찬성하겠는가. 어쩌면 반대는 당연하고 예상된 일이었을 것이다.

농업에 대해서는 김 대표보다는 아내인 박 대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농업의 현실과 전망, 노동의 강도 등에 대해 훤하게 꿰고 있었다. 청주에서 유기농 농업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2년근 도라지 모습.
▲ 2년근 도라지 모습.
반면 김 대표는 농촌 출신이었지만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하고 섬유 관련 대기업에서 화공기술자로 일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폴리머 종합반응 공정’을 취급하는 전문기술업무였다.

▲ 도라지를 키우는 산아농부의 김태준 대표와 도라지를 가공하는 도라지미의 박승희 대표가 가게 앞에서 도라지 가공품을 보여주고 있다.
▲ 도라지를 키우는 산아농부의 김태준 대표와 도라지를 가공하는 도라지미의 박승희 대표가 가게 앞에서 도라지 가공품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직을 버리고 귀농을 선택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직장 상사와 동료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다가 귀농을 결심했다.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에서다. 30년간 도라지를 재배한 아버지의 소득과 기술을 설명하며 아내를 설득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그로 인한 호흡기 질환 증가에 대응 작물로서 도라지가 최고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침내 아내의 동의를 얻어 귀농을 감행했다.

◆도라지 재배, 어렵지만 농업의 블루오션

도라지는 결코 쉬운 농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도라지를 선택한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국내 도라지 재배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한번 파종하면 3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한다. 장기투자 작물이다. 현재의 농촌 현실에서 3년간의 소득 공백을 견디기는 어렵다.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소득 공백이 크기 때문에 선뜻 시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오히려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 도라지미에서 만드는 수제 도라지 정과.(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도라지미에서 만드는 수제 도라지 정과.(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두 번째는 미세먼지로 인해 도라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서 미세먼지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사람이 호흡기질환을 생각하면 도라지를 떠올린다. 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과 직결된다. 도라지는 약용과 식용을 겸한 작물이다. 기관지가 나빠서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도라지를 꾸준히 먹으라고 권한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으면 오랫동안 쉽게 먹을 수 있다.

▲ 산아농부의 도라지 밭에서 제초작업을 하는 모습. 제초작업에 가장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산아농부의 도라지 밭에서 제초작업을 하는 모습. 제초작업에 가장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실제로 많은 사람이 효과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도라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생도라지나 분말, 도라지청, 도라지 정과 등 어느 것이나 상관없다.

▲ 안동 월영교 장터에서 직판행사를 하고 있는 도라지미의 박승희 대표.(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안동 월영교 장터에서 직판행사를 하고 있는 도라지미의 박승희 대표.(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마지막 이유는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평생 도라지를 재배한 전문가다. 부모님이 가진 재배기술과 농기계, 유통망 등 모든 노하우를 물려받아 성공 귀농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저는 귀농의 금수저라고 할 만합니다. 항상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도라지 청을 만들고 있는 모습. 정성과 근기로 만드는 도라지 청은 기다림의 미학이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도라지 청을 만들고 있는 모습. 정성과 근기로 만드는 도라지 청은 기다림의 미학이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쉽지 않은 도라지 농사

▲ 3년근 약도라지.(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3년근 약도라지.(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김 대표의 도라지 농장은 봉화군과 영주시 일원에 흩어져 있다. 무려 100여 곳에 이른다. 스마트폰 지도에 수많은 점이 찍혀 있다. 모두가 농장 위치를 좌표로 찍어 둔 것이다. 언뜻 보면 대단히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농장 배치다.

▲ 도라지청 등 각종 도라지 가공품을 만드는 솥. 청결을 최우선 과제로 하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도라지청 등 각종 도라지 가공품을 만드는 솥. 청결을 최우선 과제로 하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도라지는 연작이 되지 않고 3년 만에 수확하기 때문에 3년마다 재배지를 옮겨 다닌다. 그러니 매번 농지를 구입할 수는 없다. 당연히 임차해서 재배한다. 그래서 농장의 집단화는 불가능하다.

▲ 도라지꽃(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도라지꽃(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가장 어려운 점은 세 가지다. 낮은 발아율(싹이 나는 비율)과 임차농지 확보, 낮은 기계화율이다. 도라지의 평균 발아율은 70~80%로 낮다. 어떤 해에는 50%를 밑 돌 때도 있다. 초봄의 일기불순과 저온이 원인이다. 봄 가뭄이 심할 때일수록 낮다.

▲ 수확한 도라지 모습(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수확한 도라지 모습(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지역 특성상 넓은 밭을 구하기 어렵다. 산골짝에 있는 작은 밭이 대부분이다. 주로 인삼을 수확한 밭을 찾아서 빌린다. 인삼은 5~6년간 차광막을 설치하고 재배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잡초 종자가 차단돼 도라지 초기 재배에 유리하다.

▲ 수제 약도라지.배청(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수제 약도라지.배청(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많은 농작물이 재배와 수확까지 기계화되고 있으나 도라지는 수작업에 의존한다. 김매기와 풀베기, 수확, 정선까지 대부분 수작업이다. 기계화작업이 도라지 재배의 큰 과제다. 특히 초기 김매기 작업은 많은 인력이 있어야 한다. 김매기 작업을 할 때는 밭에 할머니들로 가득하다. 제초제를 뿌리면 풀은 안 나지만 도라지도 나지 않는다. 2년차에 들어서면 밭고랑의 풀을 제초기로 베어 준다. 도라지는 풀과의 전쟁이다.

◆1,000일의 정성, 도라지 가공품

도라지 가공품은 농부의 땀과 정성의 결정체다. 무수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 흔히 ‘1,000일의 정성’이라고 한다.

▲ 수제 약도라지.배청(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수제 약도라지.배청(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씨앗을 뿌리고 3년 동안 키워야 수확을 한다. 벼나 콩처럼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단년생작물과는 많이 다르다. 3년이란 시간을 오롯이 땅속에서 기다린다. 그동안 신선한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그 기운을 다듬고 다듬어 켜켜이 약효를 쌓아 나간다.

한방에서 길경(桔梗)으로 불리면서 귀한 약재로 대접을 받는 것은 3년 동안 땅속에서 쌓은 내공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도라지 가공품도 마찬가지다. ‘도라지미’에서 생산하는 가공품들은 모두가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도라지 청을 만드는 과정에는 7일이라는 시간이 들어간다. 어지간한 끈기가 없다면 만들기 어렵다.

▲ 도라지미에서 만드는 도라지라떼(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 도라지미에서 만드는 도라지라떼(산아농부 블로그 캡처)
7일동안 도라지를 달이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열과 휴지(休止)’의 시간을 통해 도라지의 약효를 극대화 시킨다. 인삼보다 홍삼의 약효가 더 높다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도라지미에서는 추출액방식이 아니라 도라지를 통째로 넣는다. 체온을 1℃ 올리면 면역력이 5배 증가한다는 말이 있다. ‘홍도라지생강진액청’은 체온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홍도라지생강진액청을 만드는 방법도 만만찮다. 햇생강의 즙을 추출해 전분을 가라앉히고 생강즙을 12시간 고아준다. 여기에 홍도라지 진액과 시나몬(실론계피)를 섞어서 이틀 동안 달여서 만든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면역력 증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도라지 연작 재배기술 개발과 청년창농 가이드가 꿈

김 대표의 꿈은 새로운 도라지 재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첫 번째 과제는 연작재배기술이다. 도라지는 인삼처럼 연작이 되지 않는 작물이다. 따라서 재배지역을 매번 옮겨야 하는 결점을 갖고 있다.

농장의 집단화도 어렵다. 이 같은 결점을 해결하는 연작재배 기술을 개발해 도라지 재배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 농촌에 도전하고 싶은 청년들에게 ‘창농가이드’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줄여 줌으로써 농업의 미래가 밝고 도전 가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