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최종 리스크테이커(risktaker)가 될 것인가

발행일 2020-05-20 15:21:0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코로나19로 전대미문의 경제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언은 이미 확정적인 미래가 된 지 오래다. 경기 회복 형태도 과거처럼 침체 후 급반등하는 V자 형태가 아니라 스우시(swoosh,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 옆모습을 형상화한 스포츠 용품업체 나이키의 상표)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백신개발 지연과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코로나19 재확산 현상 등을 고려해보면 대체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는 귀결임에는 틀림없어 보이고, 이 또한 확정적인 미래가 되어 간다.

이 지경이 되다 보니 시장에서는 비관론자들이 말하는 확정적인 미래를 회피 또는 방지하기 위한 정책 당국의 노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IMF사태를 경험한 바 있는 국내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EU 등 주요 선진국처럼 우리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나 금융기관 중심의 시중 유동성 조정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좀 더 공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앙은행이 가진 강력한 무기인 금리와 통화 발권력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용도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청산가치보다 잔존가치가 높은 기업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렇게 구제된 다수의 기업들과 연관된 많은 일자리들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즉 기업과 노동자는 당장의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가지게 될 것이고, 중앙은행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자가 되는 것으로 손보다는 득이 많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3차 추경 준비 당사자인 정부 입장에서도 혜택이 있긴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어들 것이 확실한데 세출은 늘려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부족분을 국채발행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때 기준금리가 제로에 한없이 가깝거나 제로 수준이라면 국채발행에 따르는 이자부담은 크게 낮아진다. 일본이나 EU처럼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하고, 단기실질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빚이 빚을 낳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난과 도덕적 심리적 압박감에서도 다소나마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력한 벽에 막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기축 통화국이거나 일본과 EU처럼 그에 준하는 국가신용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이 국가들의 중앙은행과 같은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다. 일부 남미 국가들처럼 통화를 남발해서는 해당 통화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환율 급등(통화가치 급락)과 인플레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으로 대내외 리스크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우리 금융시장만 보더라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우리 중앙은행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가 이 논리부터 깨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강력한 현실의 벽은 누구도 최종 책임자가 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저신용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 매입을 위한 특수목적기구(SPV) 운영 주체를 둘러싼 한국은행과 정부와의 줄다리기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미국의 FRB(연방준비은행)도 특수목적기구에 직접 대출하고 있으니, 한국은행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재정여건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은행이 해 주는 것이 정부에 유리하다. 반면에, 기업여신에 전문성이 없는 한국은행은 직접 대출에 나섰다가 막상 손실이 나도 문제고, 통화정책도 정부 정책방향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빠른 시일 내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재정립되지 않는 한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확정적인 미래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부터 아찔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하물며 위기의 최전선에서 최종 리스크 감수자만 기다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지금은 정부든 중앙은행이든 누군가는 최종 리스크테이커(risktaker)가 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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