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가시

발행일 2020-05-24 15:15: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미와 가시

김승희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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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면 꽃의 여왕은 장미꽃이다. 꽃의 여왕 장미꽃이 5월에 피기 때문에 5월이 계절의 여왕에 등극한 건지도 모른다. 그게 뭣이든 이름값 하기가 쉽지 않지만 장미꽃은 역시 장미꽃이다. 담장에 만개한 장미꽃을 보노라면 절로 입이 벌어지고 발길이 머문다. 장미엔 가시가 있다. 신이 준 교훈이다. 허나 시인은 루틴한 은유의 틀을 깬다.

빈손으로 세상에 나와서 지금까지 부지런히 살아왔다. 삶이 험하고 힘들더라도 열심히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들도 다 그러려니 했다. 인생이 고해라지만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기 마련이고,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가다보면 쉴 수 있는 섬이라도 나올 터이다. 앞만 보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비록 어렵고 괴롭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니. 이 고통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기쁨도 찾아오겠지.

세상살이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삶의 본모습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 인간은 기껏 눈먼 장님이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여기저기 더듬어 본다. 그러다 보면 차차 코끼리의 실체를 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인은 삶을 장미라 생각한다. 세상살이는 눈먼 손으로 장미를 만지는 일이다. 삶을 모르는 시인은 눈 먼 장님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삶은 온통 가시투성이다. 그토록 가시가 많을 걸 보니 아름다운 장미꽃이 많이 필 것을 기대하였다. 그래서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고통과 아픔을 참아내곤 했다. 장미꽃으로 그 보상이 주어진다 해도 가시는 가시다. 그렇지만 장미꽃을 상상하며 가시의 날카로운 아픔을 견뎌냈다. 살만큼 살면서 뾰족한 가시에 질리도록 찔렸다.

참고 또 참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온다는 푸시킨 시인의 말을 믿고 싶다. 삶에 무릎 꿇고 싶지 않다. 안 참으면 또 어떡할 것인가. 참을 수밖에 없는 외길 인생이다. 절망의 결과가 두렵다. 희망을 믿고 절대자에 의지하는 것이 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이젠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다. 삶을 정리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을 때다. 가시에 무수히 찔리면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니 이젠 인생을 알아도 좋을 때가 아닌가. 삶을 관장하는 절대자에게 묻고 싶다.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장미꽃이 피는 가시 있는 장미인가, 장미꽃이 피지 않는 가시만 있는 장미인가. 아니면 장미꽃만 피는 장미와 장미가시만 무성한 장미로 삶을 숙명처럼 갈라놓은 것인가. 이젠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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