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얼치기를 걸러낼 때다

발행일 2020-05-26 14:44: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고려인삼 중에 ‘얼치기’라는 삼이 있다. 전통 심마니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말이다. 임금에게 진상한 산삼 중에 약이 되는 삼은 진으로 불렀고 아무리 오래된 삼이라도 약이 되지 못하는 삼은 얼치기라 했다.

이처럼 얼치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기 혹은 탐탁치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어느 한 방면에서 기술이 부족하거나 서투른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때론 풋내기, 반풍수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반풍수는 얼치기 풍수라는 뜻이다. 됨됨이가 똑똑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얼간이’, 겨울에 논밭을 대충 갈아엎어서 심는 푸성귀인 ‘얼갈이’도 비슷한 말이다.

전통 심마니들은 얼치기를 ‘잡마니’라고 하기도 한다. 요즘 얼치기와 잡마니가 판을 치고 있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고 했다. 모두 일을 그르치는 얼치기, 잡마니를 말한다.

이런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K-방역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얼치기가 아닌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된 가장 큰 요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권력의 간섭을 원천 차단한 게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낯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결국 얼치기 정치권력이 아닌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때까지는 어땠나. 전문성은 둘째였다. 비전문가들이 나서서 반풍수 역할을 해왔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로 소비심리가 4개월 만에 개선되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총선 직전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안을 두고 경제부처 관료들이 왜 여권의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조금 나아지고 있는 소비심리 만으로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성공이라고 자평하기엔 이르다. 앞으로 돈을 쏟아부어야 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쓸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한 데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곳간에 쌓아두면 썩어버리기 마련’이라는 국가재정에 관한 인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곳간을 채우는 것도 세금이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할 돈 아닌가.

코로나19 사태와 총선이 이어지면서 쑥 들어가 버린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거쳐 갔거나 재임 중인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에 의해 나라 경제가 좌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이들이 지속해온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도 결국은 돈을 뿌리는 경제정책이다. 하지만 청년취업, 노인 일자리 등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고도 제대로 작동된 게 어딨나. 코로나19로 묻혔지만 경제는 파탄 직전 아니었던가.

그래서 코로나19 대처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정치권력이라는 외부의 입김보다 전문가 중심으로 진단을 하고 대책을 세우고 해결책을 실행한 결과가 방역 성공으로 나타났다. 이때까지와 달리 기본을 챙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코로나19 방역에도 얼치기가 나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선무당, 반풍수들이 아닌 방역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찾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은 밀려나고 비전문가들, 특히 얼치기 정치권력이 나서 그르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산발적으로 지역감염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이제부터일 것이다. 이전부터 보여 온 불경기에다 코로나19 불황이 또 얼마나 오래 갈지 안갯속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전문가들 손에 달려있다. 그래서 K-방역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대처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대책이 수립되고 여기에 휘둘리게 된다면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활동 중단으로 경제 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허약해진 상태다. 이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수술은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반풍수와 선무당, 얼치기, 잡마니를 걸러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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