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종료와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이즈음, 지방정부에서 지방분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해 줄 수 있는 법, 제도 마련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18일에는 5·18 기념식이 열린 광주에서 전국 17개 광역 단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였다. 기념식 참석이 계기가 됐지만 이날 이곳에서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제45차 총회도 열렸다.

17명의 단체장은 이날 각 지역의 현안을 논의한 뒤 지방분권과 관련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핵심 내용은 ‘21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논의할 경우 지방분권 규정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방자치단체의 이 같은 지방분권 요구는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총선이나 대선을 전후해선 어김없이 이런 유의 성명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그렇게 했는데도 상황이 늘 반복되는 걸 보면 지방분권에 대한 간절함은 지방정부의 몫일 뿐이고 실제로 지방분권을 실현할 힘과 권한을 가진 정치권과 중앙정부는 그럴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맞는 판단일 것이다.

20대 국회만 해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중앙지방협력회의법, 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경찰법 등 지방분권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되긴 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5월29일 국회 종료와 함께 이 법안들은 자동폐기된다.

그런데도 이번 45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나온 지방분권 촉구 성명서는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총선을 치르면서 거대 여당이 탄생하는 등 정치권 상황이 급변했고, 특히 여권에서 그동안 개헌 필요성을 계속 언급해 왔다는 점에서 5월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방분권이 뭐길래, 그리고 현재 시행 중인 지방자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길래 지방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지방분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흔히 혼용하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지방자치제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는 지방분권이란 통치상의 권한이 지방정부에 대폭 분산된 체제로, 중앙집권과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하고, 또 지방자치란 지방자치제와 같은 의미로, 지자체가 그 지방의 행정사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활동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지방분권을 포괄적 개념이라고 하면 그 안에 행정의 지방자치, 재정의 지방자치, 자치 경찰제, 교육 자치제 등의 제도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는 엄밀하게는 행정만의,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은 지방자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 우리나라의 현행 지방자치를 재정, 경찰, 교육 등의 자치가 빠진 반쪽짜리 지방자치라고 혹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나마 반쪽짜리 지방자치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48년 헌법에 지방자치가 명시되고 그다음 해 1949년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제정됐지만, 최초 지방선거가 치러진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한국전쟁이 끝나가는 1952년이 돼서였다. 그것도 단체장 선거 없이 지방의회 선거만 치러졌다. 그리고 4·19, 5·16 등을 겪으면서 지방자치법은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했다.

그 후 지방자치법이 부활한 것은 1987년이었다. 그리고 1991년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다시 실시됐고, 1995년 7월1일에는 처음으로 지방의원과 단체장을 모두 선출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어렵게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였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해 줄 법,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수십 년간 시행되면서 지방정부와 지역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불만의 핵심은 재정분권이 제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지방정부에 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법과 제도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불만이었다. 그때부터 30년 가까이 지방정부는 실질적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목표를 갖고 중앙정부와 국회에 법,제도의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다.

반쪽짜리 지방자치 시행은 지방의 위기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사람과 기업이 몰리며 비대화, 집중화를 우려하고 있는데 반해,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로 인해 지방소멸까지 걱정하고 있다.

지방분권의 궁극적 목표라고도 볼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은 이미 오래된 국가어젠다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와 정치권은 그 당위성과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정작 이를 추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방분권 관련법 마련에는 수십 년 넘게 손을 놓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라도 지방분권 요구에 귀 기울여 주길 지방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 늘 손 벌려야 하는 지방정부

반쪽짜리 지방자치라는 지적은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 상황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국가통계포털의 2019년 전국 광역 단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보면 대구가 51.6%, 경북이 31.9%에 그치고 있다.

대구의 경우 경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 수치가 높지만, 그 연도별 추이를 보면 2016년 57.1%에서 매년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자립도란 전체 예산에서 지자체 자체 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참고로 기초 단위 자치단체 재정자립도의 경우 대구에서는 동구, 서구, 남구가 10%대에 머물고 있다.

이같이 낮은 수준의 재정자립도를 보여주기 뭣했는지 언제부턴지 지자체에서는 재정자주도라는 지표가 많이 쓰이고 있다. 재정자주도란 전체 세입 중 지자체가 재량권을 갖는 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지방교부세, 조정교부금 등이 지자체가 재량권을 갖는 재원으로 들어가 있어 당연히 재정자립도보다 수치가 높게 나오게 돼 있다. 이 재정자주도(2019년 기준)에서는 대구가 68.9%, 경북이 71.9%로 나온다. 그러나 재정자주도 전국 평균은 74.2%이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지방정부로서는 무슨 일을 하려면 늘 중앙정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 형편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집중을 우려하면서 국가균형발전 정책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세, 지방세 비율이 8대2인 구조를 지방세 비중을 높여 임기 내에 7대3으로 할 것이고, 다음 정부에서는 5대5까지 조정돼야 한다”고 재정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눈감는 정치권과 중앙정부

5월18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자치와 분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분업과 협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21대 국회에 바라는 대한민국 시도지사 대국회 공동성명서’를 채택해 발표했다.

공동성명서에는 지방분권과 관련한 3개 항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방분권 관련 법안의 신속한 논의와 통과 △국회 내 지방분권특별위원회 설치 △개헌 시 지방분권 규정을 반드시 반영할 것 등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지방정부가 정치권에 계속해서 요구해온 것들이다. 현행 헌법은 제8장 제117조와 제118조에 지방자치와 관련한 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법률에 위임해 놓고 있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집요하기조차 한 지방분권 요구가 그동안 왜 그렇게 무시된 것일까. 그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이 져야 한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국회의원들로서는 그냥 놔둬서 전연 손해 볼 게 없는 제도이다. 오히려 허술한 지방자치제 덕에 자신들이 지방정부에 큰소리치고 행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 예산 의존도가 높다 보니 지방정부로서는 정부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에,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크게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이는 또 국회의원들에게는 예산 확보를 빌미로 지방정부를 관리할 수 있는 힘을 쥐여 줬다.

국회의원들의 타락과 비리가 터져 나오는 근원에 지방자치제가 있다는 웃고픈 얘기가 나오는 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또 그들은 선거 때마다 중앙정부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과시하며 지역발전 공약을 내놓고 이를 자신들의 표를 얻는 데 이용하고 있다.

또 중앙정부로서도 지방정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예산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기에 지방분권 요구가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껍데기뿐인 지방자치가 시행되는 수십 년 동안,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그것도 지방에 사는 국민에게 크게 돌아갔다. 가령 중앙정부 예산이 지방정부에 내려오면 주인 없는 돈이 돼 그 결과로, 흔히 보는 보도블럭 다시깔기라는 민망한 일이 연례행사처럼 나타나게 됐다.

이외에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전시성 행사나 사업, 국회의원들의 지방의원 줄세우기나 지방정부 길들이기 등, 늘 비판받고 있는 지방의 여러 문제 역시 따지고 보면 법과 제도가 뒷받침 안 된, 실질적 지방분권 없이 시행되고 있는 반쪽짜리 지방자치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권영진 대구시장은 5월18일 공동성명서 발표 자리에서 “지방분권은 범국가적이고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중요 과제다. 21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등 지방분권 관련 법안들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강조했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메인사진-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의 지방분권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 단체장들은 5월18일 광주에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제45차 총회를 열고 ‘21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논의할 경우 지방분권 규정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발표했다.대구시청 제공
▲ 메인사진-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의 지방분권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 지자체 단체장들은 5월18일 광주에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제45차 총회를 열고 ‘21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논의할 경우 지방분권 규정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발표했다.대구시청 제공
▲ 서브사진1-지방자치법 개정안 등을 심의하기 위해 5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채익 소위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서브사진1-지방자치법 개정안 등을 심의하기 위해 5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채익 소위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서브사진2-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 서브사진2-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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