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재정건전성 논란을 보면서

발행일 2020-05-27 15:01:3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지난 25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의 주요 내용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행정부는 전시재정편성이라는 각오로 신속히 3차 추경안을 편성하고, 국회는 오는 6월까지 처리해 주길 바란다는 대통령의 주문은 이미 시장에서 예상했던 바로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증세없이 추경을 포함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견지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워 세입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면 된다는 배경 설명이 잠시 주춤하던 재정건전성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과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은 둘째 치더라도 빠르게 악화되는 재정건전성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충격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는 시장의 입장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양측 모두 나름의 정당성이 있는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논쟁인가 싶기도 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사태가 미증유의 경제적 충격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실제로도 그런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와 기업들이 생계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좋은 일자리든 아니든 일자리 총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도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지금은 어떻게 하든 실업을 막아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에 틀림없고 재정지출이든 뭐든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정책당국의 노력 자체가 저평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논란의 핵심 사안도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국가부채 증가 그 자체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강력한 세출구조조정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국채를 발행할 필요도 없고 국가부채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추경은 논외로 하더라도 경기 악화로 재정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지금은 기존 예산안을 줄이지 않는 한 국가부채 증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 방어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부채 증가는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렇다고 재정건전성에 대한 논의가 아주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단기간 내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통화량이 급팽창하게 되면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위기 시에는 주어진 예산제약을 넘어선 재정편성도 당연하다는 이유로 예산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원의 비효율성을 야기함으로써 재정건전성과 국가 경제를 훼손하는 이른바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 현상의 예방을 위한 통제장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위기를 핑계로 공기업을 포함해 국가재정에 기대어 연명하고자 하는 좀비기업들에게 계속해서 당근을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또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근거 마련을 위해서라도 재정지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재정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지출 부문별로 따져보고,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도 미리 예측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3차 추경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세출구조조정에 관한 논의와 재정지출 확대 우선 순위와 규모를 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위기극복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 정책당국의 단기적인 확장적 재정 방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난 2차례의 추경효과와 3차 추경의 디테일에 대한 논의도 심도있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세출구조조정이나 연성예산제약 현상 예방장치 도입 등과 같이 과도한 재정건전성 훼손을 막을 수 있는 보완장치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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