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출근을 앞두고 면도를 하다보면 상처 입기가 일쑤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이번엔 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조심해 보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면도기를 여러 차례 바꿔 보지만 그것마저도 마땅한 대안은 아닌 듯하다. 핏빛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내다 보면 이유모를 짜증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사라져 가는 이발소 주인의 면도 솜씨가 그립다. 날 선 폭 넓은 면도칼로 단번에 해결하는 깔끔한 솜씨는 전문가만이 누리는 여유다. 손님의 불안감을 단번에 신뢰와 편안함으로 바꿔버리는 솜씨는 ‘꾼’임을 증명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불안이 끊이지 않은 일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의 통계치를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초중고 전 학년이 등교하는 요즘은 확진자 제로라는 보도가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한편에선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비리 의혹이 언론과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진실게임이 어느새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반일과 친일 프레임으로 넘어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각 진영의 아전인수식 확증편향은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듯하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원구성 협상을 앞둔 여의도의 모습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상임위원장 18석을 배분하는 문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설전은 룰이 무너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과반을 만들어 준 국민의 명령이며 국정주도권을 위임한 것이라며 상임위 18석 전부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래통합당은 의석수에 비례한 11:7의 배분이 국회 원구성의 관행이며 여당이 무조건적인 행정부의 도우미로 나서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룰이 무너진 말싸움은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 기마전을 연상케 한다. 기수의 모자만 벗겨도 이기는 게임임에도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만 하는 유치한 승부욕이 떠오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운동회 연설인 ‘인생은 항상 겨루지만’이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이기고 지는데 집착하지 말고 규칙을 지켜서 열심히 겨루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한번 겨루기해서 진 사람이 다음 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란 말은 깊은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치 ‘꾼’들이 그리운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 싶다.



흔히 ‘꾼’의 사전적 의미를 찾자면 직업적인 일이나 전문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그러한 일이나 행위를 전문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한때는 부정적 의미에 더하여 비난받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그 언어적 의미는 전문가를 지칭하는 말로 변해 오면서 프로페셔널과 다름이 아니다. 엄연히 직업란에 정치인이라고 쓰는 현실에서 정치 ‘꾼’이 더없이 정겹게 들려야 하는 이유이며 지향해야 할 방향인지도 모른다. 시류에 영합하며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삼류 정치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치의 본성을 이해하며 협치를 이끌어 가는 정치 ‘꾼’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낙선한 모 국회의원을 자타공인 정치 9단으로 부르는 모양새다.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여타 많은 방송사에서 정치 평론가로 초청경쟁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린다. 한국 정치사에 정치 9단으로 불린 인물은 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국무총리를 손꼽을 수 있다. 공과를 구분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정치가 가지는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온몸으로 저항하면서도 국익과 국민을 우선시하며 협치를 이끌어 낸 분들임은 분명하다. ‘꾼’의 면모를 갖춘 정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과 우리 일상에서 ‘정의를 내세운 곳에는 정의가 없고 민주를 내세운 곳에는 민주가 없다’는 말이 희화화 되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가치인 정의와 진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목표인 민주가 상실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에 빗댄 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권의 책임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진보와 보수라는 단일 프레임으로 정당정치의 폐단을 답습해 온 탓임이 분명하다. 검증되지 않은 지역 및 비례후보를 영입하고 비리와 도덕성이 노출되었음에도 안고 가는 몽니와 아집은 부끄럽고 유치할 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의도 정치는 언제 올 지 궁금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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