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쳐 심심산골에서 꿀벌을 키우는 양봉명문가||농사가 좋아 귀농한 남자의 꿀맛 나는

▲ 박용민 대표가 훈증기로 연기를 뿜어내면서 벌통을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연기는 말린 쑥을 태운 것이다.
▲ 박용민 대표가 훈증기로 연기를 뿜어내면서 벌통을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연기는 말린 쑥을 태운 것이다.
예전에 어른들은 벌(토종벌)은 영물(靈物, 신령스러운 짐승)이라고 했다. 집에 초상이 나면 벌통을 먼저 가리고, 부고장(訃告狀, 죽음을 알리는 글)을 붙였다.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영물인 벌들이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감미료가 부족하던 시절 꿀벌은 소중한 존재였다. 벌꿀은 귀한 식재료인 동시에 약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꿀벌은 가족처럼 대접을 받았다. 꿀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각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처럼 꿀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애덤 돌리잘’ 교수가 IAPV(이스라엘 급성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을 가지고 한 실험의 결과다.

▲ 박용민 대표가 로열젤리를 채취하는 기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보통의 벌집보다 크고 민틋하게 길어 아래로 드리워진 왕대모양의 벌집을 만들어 놓으면 벌들이 로열젤리를 넣는다.
▲ 박용민 대표가 로열젤리를 채취하는 기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보통의 벌집보다 크고 민틋하게 길어 아래로 드리워진 왕대모양의 벌집을 만들어 놓으면 벌들이 로열젤리를 넣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도자인 여왕벌을 스스로 선발하지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지도자를 찾아 나서고 퇴출을 시키기도 한다. 일종의 레임덕이고 탄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세상의 축소판과 같은 꿀벌을 3대에 걸쳐 80여 년 동안 키우는 양봉명문가를 찾았다. 군위군에서 양봉을 하는 ‘3대 꿀벌농원’의 박용민(60) 대표가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800여 군(통)의 꿀벌을 사육해 연간 1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통상적으로 200여 통으로 채밀을 하고 나머지는 봄철 수정용 벌로 과채류 재배농가에 공급한다.

◆3대를 이어가는 꿀벌 가족

3대째 꿀벌을 키운다. 그 세월이 무려 80여 년이다. 백 년 가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동 하나로 3대, 4대를 이어가는 일본의 백 년 가업을 부러워하지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양봉으로 3대를 이어 간다는 것도 드문 일이다.

▲ 박용민 대표가 꿀벌이 가득 붙은 소비(집)를 들어 보이고 있다.
▲ 박용민 대표가 꿀벌이 가득 붙은 소비(집)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박 대표 집에서 벌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 때부터다. 그때는 토종벌이었다. 1960년대에 아버지가 양봉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아버지는 87세의 고령임에도 아직까지 키운다. 얼마 전까지는 사과 과수원도 경영했다.

▲ 꿀벌이 가득한 소비(집).
▲ 꿀벌이 가득한 소비(집).
박 대표는 2006년부터 양봉을 시작해 3대의 맥을 이었다. 도시에서 건축업과 부동산 중개업을 운영하다가 귀향해 양봉을 시작했다. 벌써 양봉 경력이 15년째다. 왜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했느냐는 물음에 “농사일이 즐겁고, 꿀벌을 돌보는 재미가 좋아서 양봉을 시작했다”면서 “꿀벌 3대의 맥을 잇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3대로 이어졌고, 매일 꿀벌을 돌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성공한 귀농이라고 말하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꿀맛 나는 귀농이라고 한다. 3대를 이어 간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보답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꿀벌의 세계

꿀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사회적 동물로 집단생활을 하는 모습이 인간세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일벌과 수벌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채밀과 육아, 경비, 청소 등 하는 일이 제각기 다르다. 협업체계가 잘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 천연 항생제인 프로폴리스를 채취하는 모습, 검은 망사에 노랗게 붙은 것이 프로폴리스다.
▲ 천연 항생제인 프로폴리스를 채취하는 모습, 검은 망사에 노랗게 붙은 것이 프로폴리스다.
병균에 감염된 일벌이 생기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한다. 여왕벌이 늙어 능력을 잃으면 새로운 여왕벌을 선발하고, 몰아내는 탄핵도 감행한다. 이런 꿀벌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생태적 습성도 알아야 한다. 벌통 주변의 모습만 보고도 벌통 안의 상황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관리를 해야 한다. 무밀기에는 식량을 공급하고, 질병에 감염 여부도 파악해야 한다. 채밀 전에 정리채밀로 꿀의 순도를 유지해야 한다. 꿀벌의 숫자가 너무 많으면 분봉도 한다. 이런 일들은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한 번에 몰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자동채밀카를 밀고 가는 박용민 대표, 전기충전식이라 소음이 없고 노동력을 많이 줄여준다.
▲ 자동채밀카를 밀고 가는 박용민 대표, 전기충전식이라 소음이 없고 노동력을 많이 줄여준다.
중노동은 아니지만 연속성을 가진 일이다. 벌통을 돌보는 날에는 하루 2만 보 이상을 걷는다. 섬세한 손길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박 대표의 발길은 언제나 벌통 주변에 머물러 있다.

◆양봉의 연중 스케줄

양봉은 수레바퀴가 돌 듯 연중 스케줄에 따라 돈다. 1년 중에 첫 작업은 꿀벌을 깨우는 작업이다. 사람도 아닌 잠자는 꿀벌을 어떻게 깨울까. 1월 하순께 벌통에 화분 떡을 넣어주면 벌들이 스스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어린 아이들이 잠을 자다가도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잠을 깨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박용민 대표가 자동채밀카에 부착된 탈봉기 사용법을 선보이고 있다.
▲ 박용민 대표가 자동채밀카에 부착된 탈봉기 사용법을 선보이고 있다.
그때부터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한다. 2월 중순에는 과채류 재배농가에 수정 벌을 공급한다. 수정 벌들은 농가의 일손을 덜어주는 효자손이다. 꿀벌을 이용한 자연 수정이라 과채류의 품질도 좋아진다. 3월이 되면 가을에 공급한 식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식량을 공급해 체력을 유지시킨다. 다가올 일 철에 대비해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다.

4월에는 아카시아 꿀 채밀을 위해 계상(2층으로 포개어 놓는 벌통)을 설치한다. 아카시아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날에 정리채밀(벌통 안에 남아 있던 꿀을 완전히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고품질의 꿀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고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카시아 개화시기에는 이동 양봉도 실시한다. 꽃을 따라가는 유랑생활이다.

▲ 봉장(농장)에서 벌통 앞에 선 박용민 대표.
▲ 봉장(농장)에서 벌통 앞에 선 박용민 대표.
6월에 접어들면 야생화 꿀과 밤꿀을 채취하고, 장마철 무밀기에 대비해 식량을 공급하고 증식작업에 들어간다. 무밀기에 식량을 공급하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초겨울 월동에 들어가면 양봉의 1년 스케줄은 끝나고 휴식기에 접어든다. 사람과 꿀벌과 하늘이 함께하는 3자 협업이다. 그중에서 하늘의 역할이 가장 크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벌꿀

벌꿀에 대한 박 대표의 생각은 확실하다. 믿을 수 있는 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양봉을 하면서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따라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벌꿀을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꿀벌을 키우고 벌꿀을 생산한다.

박 대표의 봉장(농장)은 도로에서 2㎞ 이상 떨어진 산골이라 오염요인이 없는 등 자연환경이 매우 좋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응애나 진드기, 바이러스 등 병해충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질병의 예방을 위한 병해충 방제는 필수적이다. 다만 가장 안전한 꿀 생산을 위해 방제시기를 조절한다. 가을철에 방제를 마무리해 봄철 꿀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다. 봄철 방제를 채밀 40일 전에 중단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생산된 벌꿀은 반드시 농약 잔류검사와 탄소동위원소 비율 측정을 실시한다. 벌꿀을 채밀하기 전에는 정리채밀을 실시해 벌꿀의 순도를 높인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대부분 벌꿀은 직거래를 통해 단골고객들에게 판매된다. 단골 고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도가 높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수정 벌과 밀원조성으로 양봉의 새로운 길 개척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유엔식량기구(FAO)는 인간이 먹는 작물의 64%가 꿀벌을 통해 가루받이한다고 추정한다.

이것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량도 없어진다는 말이다. 기후온난화에 따라 양봉의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아카시아가 전국 동시 개화가 일어나 이동 양봉도 어려워지고 있다. 수령이 50∼60년을 넘긴 아카시아 나무도 노쇠화되고, 군락지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박 대표는 두 가지 전략을 추진한다. 참외와 멜론 등 과채류 재배농가에 수정용 벌을 공급해 작물의 수정 활동을 도우면서 소득도 올리는 방안이다. 또 봉장 주변에 밀원수를 식재해 밀원 감소에 대응한다. 산에는 헛개나무와 옻나무 등을 식재해 기능성 꿀을 생산하고 유휴 농경지에는 유채 등 초화류를 재배해 벌꿀도 채취하는 것은 물론 경관도 가꾸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6차 산업의 준비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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