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쓰는 편지-먼저 간 아우를 어느 봄 꿈에 보고

박기섭

뻐꾸기 봄 한철을 갈아낸 그 먹물을 내가 받네 내가 받아 한 장 편지를 쓰네 어디라 머리칼 한 올 잡아볼 길 없는 네게

너 있는 그곳에도 봄 오면 봄이 오고 봄 오면 멍든 봄이 멍이 들고 그런가 몰라 서럽고 막 그런가 몰라 꽃 피고 또 꽃 진 날에

너 나랑 눈 맞춰 둔 그 하루 그 허기진 날 말로는 다 못하고 끝내는 못다 하고 꽃이면 꽃이랄 것가 꼭 꽃만도 아닌 것아

너 다녀간 꿈길 끝에 찬비만 오락가락 오락가락 찬비 속에 목이 젖은 먼 뻐꾸기 젖은 목 말리지 못한 채 먹점 찍는 먼 뻐꾸기

-《발견》(201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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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은 달성 마비정 출생으로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키 작은 나귀타고』『默言集』『하늘에 밑줄이나 긋고』『엮음 愁心歌』『달의 門下』『角北』『서녘의, 책』등과 시조선집『비단 헝겊』이 있다. 그는 등단 이후 주정과 주지를 넘나들며 개성적인 목소리의 발현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내밀한 서정세계로 출발해서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주지적인 시조 세계를 개척하여 시조가 단아한 서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뻐꾸기가 쓰는 편지’는 그가 얼마나 농밀한 서정세계를 시조로 잘 읊조리는지 여실히 알게 하는 시편이다. 부제 먼저 간 아우를 어느 봄 꿈에 보고라는 구절에서 보듯 크나큰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뻐꾸기 봄 한철을 갈아낸 그 먹물을 내가 받네 내가 받아 한 장 편지를 쓰네라는 대목에서 이미 그 곡진함은 다 전해진다. 내가 받네 내가 받아라는 표현은 다른 이는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반복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종장 어디라 머리칼 한 올 잡아볼 길 없는 네게는 더욱 절절하다. 아우의 머리칼 한 올이라도 잡아 보고 싶은 그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더욱 애타는 것이다. 먼저 간 아우를 어느 봄꿈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잊고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늘 간절한 마음이 있어 꿈에 본 것이다. 그것도 봄 꿈이다.

얼마나 애절하면 봄 앞에 멍든을 수식하고 있을까. 또한 서럽고 막 그런가 몰라라고 혼잣말을 한다. 꽃 피고 또 꽃 진 날에 그럴까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리고 너 나랑 눈 맞춰 둔 그 하루 그 허기진 날 말로는 다 못하고 끝내는 못다 하고 꽃이면 꽃이랄 것가 꼭 꽃만도 아닌 것아라면서 아우를 부르니 슬픔은 극치에 다다른다.

‘뻐꾸기가 쓰는 편지’는 이렇듯 애잔하다. 작품의 배경이 된 먼저 간 아우로 말미암아 고조된 슬픔이 네 수의 시조로 체현되어 그 절절함이 심금을 울린다. 그만이 운용하는 절묘한 리듬과 말의 되풀이로 시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내가 받네 내가 받아, 봄 오면 봄이 오고 봄 오면 멍든 봄이, 그 하루 그 허기진 날 말로는 다 못하고 끝내는 못다 하고, 찬비만 오락가락 오락가락 찬비 속에, 목이 젖은 먼 뻐꾸기 젖은 목 말리지 못한 채, 라는 대목에서 보듯 앞 구절을 받아 뒤 구절로 넘기는 치밀한 시적 장치로 음악성을 확보함으로써 가락이 넘실거리면서 의미를 심화시킨다. 그만이 해낼 수 있는 개성적인 작법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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