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총선이 끝난 지 달포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듯하다. 지역구 공천에 대한 시시비비도 끊이지 않지만 날로 증폭되고 있는 비례대표 공천 잡음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설상가상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비상한 해명이 요청된다. 부정선거 의혹은 SNS를 뜨겁게 달구다가 이젠 유력 언론마저 관심을 보이는 형국이다. 선거부정 의혹은 주로 대선과 관련하여 패한 쪽에서 뜬금없이 들쑤신 적은 있었지만 총선에서 시스템과 관련된 조직적 개표조작을 주장한 일은 전례가 없다. 불신 풍조가 팽배하고 선관위의 공신력마저 땅에 떨어졌다.

신권 다발처럼 빳빳한 사전 투표지, 전자개표기가 표를 잘못 인식하는 장면, 연속용지처럼 붙은 사전 투표지, 빵 상자에 담긴 투표지 등의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공유되었다. 사전 관외 투표지가 개방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감시원도 없이 우편으로 허술하게 이동되는 장면이 시민단체에 의해 유튜브로 방송되어 충격을 주었다. 중앙선관위는 투·개표 과정을 공개 시연했지만 정작 의혹을 제기해온 전문가들의 현장 입장을 막았다. 의혹 해소 차원에서 시연한 것이라면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참여시켜야 될 텐데 관련전문가를 배제한 조치는 이해하기 힘들다. 공개 시연은 왜 했는가. 프로그램 조작 여부에 대해 확인 불가한 전자개표가 절차적 정당성을 갖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선거관리를 공명정대하게 했다 하더라도 의혹을 갖거나 불복하는 사람은 요건을 갖추어 선관위나 법원에 해명이나 법적 판단을 물을 수 있다. 낙선자가 개표조작을 의심하여 진상을 밝혀달라고 선관위나 법원에 요구하는 건 정당한 권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표조작은 터무니없다며 불쾌해하고 자료공개마저 거부하는 태도는 공복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낙선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기는커녕 불복하는 사람을 귀찮아하고 시원한 해명을 거부하며 전문가의 조사를 배제하는 행위는 공정관리를 스스로 저버리는 어리석음이다. 전자개표를 이해할 만한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입회하에 공개 시연하고 시스템을 잘 설명함으로써 철저히 검증받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낙선자의 충격을 치유하기위하여 심리치료나 정신과치료를 주선해주진 못할망정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을 해선 안 된다. 낙선자들은 주권자이자 국가가 보호해줘야 할 약자다.

공명정대해야 할 선거행정을 국민이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는 부정선거의 사실여부완 별개의 문제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무슨 일을 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부정선거 논란이 신뢰 문제로 전환되는 셈이다. 공자는 정치란 군사, 경제 그리고 신뢰라고 했다. 이 셋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군사를 버리라고 했고, 나머지 둘 중에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경제를 버리라고 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치가 작동될 수 없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경제와 군사도 결국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도 공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현대국가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와 리더십의 출발점은 신뢰다.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법적 안정성도 국민의 신뢰를 지켜준다. 법적 안정성은 공적인 결정을 뒤집지 않는 것이다. 행정행위에 공정력과 존속력을 주고 판결에 확정력을 인정하는 이유도 법적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는 장치다. 일사부재리나 일사부재의도 마찬가지다. 공적인 결정이나 판단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꼴이다. 물론 구체적 타당성도 중요하다. 사안의 정확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안정성도 그에 못지않은 소중한 가치다. 법원의 판결을 재심하고 정부 결정을 재조사하려는 잦은 시도는 국민의 신뢰를 깨는 자해다. 한사람을 구하려다가 전부를 잃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선거부정 논란도 불신에서 싹텄다. 항간에 불신풍조가 만연한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판단기준으로 내로남불이 적용되고 거짓말이 어느덧 일상적인 일인 양 되었다. 뻑 하면 재조사고, 걸핏하면 재심청구다. 과거를 마구 뒤엎다 보면 제 발밑까지 꺼지는 법이다. 이런 정부를 누가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나라의 기강은 신뢰의 단단한 기반 위에서 제대로 선다.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이끌어내려면 그 실마리를 신뢰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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