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 시인 천영애
▲ 시인 천영애
한때 시가 문장의 최고봉일 때가 있었다. 과거시험도 문학 고시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시가 밥도 먹여주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이고, 요즘도 시를 쓰냐는 말이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러나 여전히 시는 유효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시를 쓰고 있고, 쓰고 싶어 하고, 향유한다. 아마도 시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면서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이탈리아의 한 작은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저항 시인인 네루다는 날마다 자기에게 오는 편지를 배달해 주는 우편배달부 마리오와 친해진다. 어느 날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묻는다. 시가 무엇가요? 네루다는 답한다. 시는 은유지. 은유는 뭔가요? 네루다는 다시 묻는다. 이 섬에서 아름다운 게 뭔가? 베아트리체 루소요. 베아트리체는 마리오가 짝사랑하는 섬의 여인이다.

그런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은유에 대해서 알려준다.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아버지의 뱃전에 부딪히는 바다 소리, 밤 하늘의 별,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마리오는 네루다에게서 배운 은유의 언어로 베아트리체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우리의 언어 중에서 은유의 언어를 빼고 나면 사물이나 사건, 사태를 표현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자연을 자연 그대로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비유의 언어를 쓸 수 밖에 없고 특히 은유의 언어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마리오는 은유를 익히면서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고 자신이 사는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아가고 사회주의자인 네루다를 지지하기 시작한다. 마리오 역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암 투병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영화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마지막 작품은 불후의 명작이 되었으니 개봉작을 보지 못한 그도 천국에서 웃을 것이다.

좋은 영화에는 좋은 음악이 반드시 있다. 이 영화에도 루이스 바칼로프가 작곡한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음악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차준환이 프리 경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원곡은 경쾌하고 밝지만 이작펄만의 바이올린으로 재해석한 곡은 좀 더 음이 깊고 감수성이 짙다.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 시적인 대화 등이 어울려 한 편의 아름다운 시 같다. 영화를 보고나면 시는 문자로 쓰인 어려운 예술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고정관념도 깨어질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네루다가 다시 카프리 섬을 찾았을 때 섬에는 마리오 대신 어린 네루다가 살고 있다. 은유를 배우면서 세상에 대해 눈을 뜬 마리오는 사회주의 시위 중에 죽었고, 네루다를 그리워하던 마리오는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에게 네루다의 이름을 지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아직도 시를 쓰냐는 질문을 던진다. 참으로 어이없고 가당찮은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하지만 낫고 싶지 않아요”라는 마리오의 대답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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