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아날로그 영역

발행일 2020-06-08 14:34:5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장기화 모드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언택트(untact) 즉, 비대면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면서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염병에 따른 트라우마는 상당 기간 지속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미 바뀌기 시작한 시민들의 생활방식은 장기간 유지되거나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생활 속 거리두기가 비접촉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의사소통 방식도 결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은 오프라인의 대안으로 온라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으며, 이는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디지털 대전환의 가속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IT용어사전에 따르면 디지털 대전환은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기업에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플랫폼으로 구축하고 활용함으로써 전통적인 운영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책과 전화 등으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아날로그 세계에 조용히 스며들던 디지털 대전환을 ‘폭주 기관차’로 만들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비대면, 비접촉 생활문화가 확산되면서 국가 전반의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기업들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구축하는 등 디지털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외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추세다.

대구지역 공공도서관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2월18일 대구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마자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도서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랜선’이란 신조어까지 동원하면서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플랫폼을 이용한 랜선 강의, 랜선 전시, 랜선 독서토론 등이 그것이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서관 종사자들은 디지털기기를 활용한 영상 촬영과 편집에 이어, 유튜브 업로드 방법까지 서둘러 공부하고 실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지털 대전환의 속도를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디지털 하드웨어 분야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도서관의 디지털 대전환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온라인으로 전자책(e-book)을 읽을 수 있는 전자도서관의 경우 활용실적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이전에 비해 급성장하면서 시민들이 읽을 만한 전자책을 훨씬 더 많이 구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지하철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시범적으로 설치됐던 무인도서관인 스마트 도서관에는 풍선효과가 적용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설치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스마트 도서관은 코로나19 사태 덕분에 예산을 늘려 증설해야 할 아이템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상상력, 창의력, 융합, 감성, 윤리 등 아날로그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향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되면 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아날로그 영역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삶의 본질이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논의와 고민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인간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도구(tool)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일컬어지는 인공지능도 빅데이터를 분석한 패턴을 인식하는 알고리즘이 작동되는 디지털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급기야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며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폄훼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을 당연히 인간이 설계하는데도 말이다. 디지털 대전환을 디지털 만능 또는 디지털 숭배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근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이하는 공공도서관에서 책 읽기와 시 쓰기, 역사 공부하기 등 아날로그 영역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