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고 있는 우울한 예측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세상에는 자기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리스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에게 불행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고, 눈앞에는 오로지 정점을 가늠할 수 없는 가파른 랠리(rally, 증시 강세장)가 펼쳐져 있을 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승전보를 실어 나르기 위한 메신저의 빠른 발 놀림이 전부다.

이처럼 최근 국내 자산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주식시장을 보자. 지난 3월 중순 1천500선이 붕괴되면서 연중 저점에 도달한지 3개월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2천200선을 넘나드는 수준으로 상승했고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시황이 나빠져도 기대수익을 쫓아 추격자금이 유입되어, 주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는 듯하다. 언제든지 증시로 곧장 유입될 수 있는 증권사들의 고객예탁금이 지난 해 연말 27조 원에서 올 해 5월 말에는 45조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싸한 기대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안정화되는 듯했지만 최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광풍이 불고 양도세 중과 시한을 앞둔 절세용 매물 소진이나 용산 등 국지적인 개발 이슈 현실화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재상승하고 있다. 여기에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와 늘어난 거주 요건 변경을 포함한 1주택자 비과세 요건 강화 등으로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등 전세가격마저 급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역대 최저수준으로 내려앉은 금리에서 보듯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돈풀기가 이어지면서 시중부동자금이 1천100조 원을 넘어선 상태로 언제든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상황이다.

상품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통상 위기시에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화와 금, 국채 등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가격을 상승시키는 반면 원유나 비철금속, 농산물 등과 같은 원자재 시장에서는 자금이탈로 가격이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는 위기의 진원이 진정되지 않는 한 이런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최근의 현상은 과거 수차례 경험한 위기 때 자산시장이 보여준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산유국의 감산 합의의 영향이 큰 원유를 제외하더라도 주요 비철금속과 농산물 가격은 이미 3월 중순 이후 회복세로 전환되었다. 달러화와 국내외 금 가격도 정점을 찍고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지금은 과거 우리가 경험한 수차례의 위기 때와는 다른 것 같고, 누구나가 기대를 가져 볼 만한 상황이 된 것처럼 보인다. 아니, 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자산시장에서 희생당한 개인들은 이제 그 대가를 쟁취했으면 하고, 우리 경제는 자산효과(wealth effect)로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와 임금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산시장에서는 유동성 랠리가 아닌 실적 랠리가 펼쳐지면서, 버블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당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재정 지출을 감내한 결과가 이렇다면 위기 이전의 정상화로 되돌아 가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할 것이고, 경기 조절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견실한 경제정책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전대미문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마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해 온 한국은행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이번 위기가 이런 대미를 맞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국내 자산시장이 언제 곤두박질칠지 염려도 된다. 미국 경제학자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의 말처럼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피어나는 질긴 다년생화(a hardy Perennial)와 같아서 언제 우리 곁에서 다시 꽃을 피울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로고프(Kenneth Rogoff) 교수의 지적처럼 과도한 부채를 지렛대로 한 호황의 끝은 늘 그래 왔듯이 금융위기였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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