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일반

강소농 현장을 가다 (64) 고령 사랑뜰농원

30년 노하우를 갖춘 농사 전문가
달고 아삭한 참외의 참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완숙 퇴비로 땅을 가꾸고, 명품농산물을 만드는 뼛속까지 농사꾼

참외 선별, 포장작업을 하는 나영완 대표와 이수경 대표.
참외는 달고 아삭한 식감이 다른 과일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노란색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일까 참외는 눈으로 먼저 먹고, 입으로 한 번 더 먹는다고 한다.

그럼 이처럼 맛있는 참외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정인지와 김종서 등이 쓴 ‘고려사’에 참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을 볼 때 참외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외(瓜), 첨과(甛瓜), 참외(眞瓜), 왕과(王瓜), 띠외(土瓜), 쥐참외(野甛瓜) 등으로 불렸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국보 제94호 ‘청자참외모양병’이다. 고려 인종의 능인 장릉에서 발굴된 고려청자이다. 높이 22.8㎝로 참외 모양의 동체(중심부분)와 참외꽃 모양의 아가리, 치마 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있는 화병이다. 단정하고 세련된 형태로 예술성이 높다는 평을 받는다.

2차 선별작업을 하는 나영완 대표. 깨끗한 지하수로 씻은 참외를 무게별로 분류한 이후 육안으로 한 번 더 선별작업을 거친다.
1천여 년 전에 참외 모양의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참외가 널리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참외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토종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동안 참외농사를 지어온 토종 농사꾼을 만났다. 고령에서 ‘사랑뜰농원’을 운영하는 나영완(53)·이수경(51)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참외 8천여㎡와 딸기 4천여㎡를 재배해 연간 2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30년 동안 참외를 재배했다. 5년 전부터 소득 안배를 위해 딸기도 재배한다.

◆새농민상에 빛나는 전문농부

나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3년간 섬유회사에 근무하다 농촌으로 들어왔다. 그때 23살이었다. 마을에 청년은 아무도 없었다. 농촌으로 들어오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젊은 사람이 왜 농촌으로 들어오느냐, 장가도 가기 어렵다”는 게 주변의 인사였다.

나영완 대표가 딸기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건강이 이유라고 했지만 농촌이 좋고 농사일이 좋았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한다. 1990년 3월 주변 반대에도 고향으로 들어와 농사일을 시작했고, 9월 이 대표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한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농사일은 오롯이 부부의 몫이 됐다.

아버지 농사를 이어받아 30년이 됐다. 2천600여㎡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참외를 재배했다. 아침저녁으로 덮고 벗기는 볏짚 거적으로 보온해야 하기에 일손이 많이 들었다. 완전 수작업이어서 재배 면적 확대도 어려웠다.

깨끗한 지하수로 씻고, 무게별로 분류한 참외.
당시 부직포 덮개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모두가 머뭇거렸다. 처음 보는 부직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대표가 도전에 나섰다. 성공이었다. 일손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덕분에 재배 면적도 넓힐 수 있었다. 1만3천여㎡까지 늘렸으나 5년 전에 딸기재배를 시작하면서 현재 규모로 조정했다.

나영완 대표가 경북농업기술원 이준화 강소농전문위원으로부터 딸기 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작물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면서 아침마다 농장 구석구석을 살피는 나 대표는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이었다. 지역사회 활동도 열성적이다. 4H 활동을 시작으로 농영경영인회 등 많은 농민단체 활동을 했었다. 다산면 이장협의회장과 새마을협의회장을 맡아 지역사회를 이끄는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부부는 2018년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하는 ‘새농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달고 맛있는 참외 비결은 땅심

올해로 참외재배 경력만 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3번 바뀐 시간이었다. 참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은 짧았다. “땅이다.”

한창 익어가는 딸기. 딸기 전용 연동하우스에서 고설양액재배를 한다.(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모든 작물의 기본은 땅이라고 했다. 나 대표는 그 땅을 가꾸고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주기적으로 토양검사를 실시하고 완숙퇴비를 사용해 땅심을 돋운다. 한우 10마리를 키우는 것도 퇴비를 얻기 위한 것이다. 우분은 1년 이상 완숙해서 사용한다.

런너를 꺾꽂이해 키운 딸기 모종을 심는 모습.(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토양 소독도 철저하다. 매년 6월 참외수확을 마치면 비닐하우스에 물을 가득 채우고 로터리 작업을 실시해 축적된 염류를 제거한다. 이때 한 달 이상 비닐하우스 문을 완전히 닫고 태양열로 내부 온도를 올려 소독한다. 내부 온도는 60~70℃, 지온은 40℃ 정도로 올라간다.

잘 익어가는 딸기.(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높은 온도로 병해충의 없애는 것이다. 토양소독만 잘해도 다음해 병해충 발생은 많이 줄어든다. 그만큼 방제비용도 줄어든다. 전문 농사꾼의 재배기술은 단순해 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노하우였다. 딸기 하우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딸기에 대한 도전과 실패

5년 전에 참외를 줄이고 딸기재배를 시작했다. 농사가 직업이니 어느 작목이라도 자신이 있었다. 연동하우스를 짓고 본격적인 재배에 나섰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길도 많았으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꿀벌을 이용해 수정작업을 하는 딸기. 꿀벌을 이용해 수정하면 품질도 좋아지고 노동력도 줄인다.(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모든 작물 재배의 기본원리는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주변 걱정에 “양식 요리사가 라면을 끓일 줄 모르겠느냐”고 빗대어 답했다. 농사에 대한 자신감인지, 자기 과신인지 모른다.

품질이 좋다는 종묘상의 말만 믿고 일본 품종 모종을 구입해 심었다. 딸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희망도 자랐다. 그러나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달리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렸으나 기다리는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 쪼그리고 앉아 딸기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드문드문 달리기 시작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자체 육묘기술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다음해도 같은 모종을 심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활짝 핀 딸기꽃.(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2년 연속 참담한 실패였다. 일본산 모종 결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종묘는 관리 부실이라고 우겼다. 모종이 잘못됐다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연간 1억5천만 원의 조수익을 예상했으나 2천만 원 남짓 건졌다. 자재비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택배로 배송하는 딸기 상자. 파손을 막기 위해 난좌(과일을 보호해 주는 완충재)를 이중으로 설치해 포장한다.(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2년간의 소득 공백을 메워 준 것은 참외였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세 번의 실패는 없다는 생각에서 모종 꺾꽂이(삽목) 기술을 익혔고, 이제는 직접 생산해 사용한다. 지금은 국산 딸기인 ‘설향’을 재배해 본 궤도에 올라섰다.

◆딸기로 뭉친 다산딸기조합

농민들이 뭉쳤다. 같은 마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7농가가 ‘다산딸기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조합을 구성하고 공동으로 홍보와 체험을 진행한다. 운영 형태가 색다르다. 조합 운영을 관리할 전문가를 채용해 운영한다. 일종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방금 수확한 딸기.(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농민들은 생산에 주력하고 전문경영인이 딸기 단지를 홍보하고 체험객을 모집한다. 모집한 체험객은 농가별로 순환하면서 배정한다. 한 농가에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딸기 육묘 모습.(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단체체험이 취소됐으나, 가족단위 체험객 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체험 환경도 좋다. 대구와 인접해 접근성이 좋다. 단지 중심부에 1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동 주차장과 300㎡ 규모의 공동체험장도 갖췄다.

코로나19로 인한 판매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판매 방식을 도입, 지난 4개월 동안 8천여 명이 다녀갔다. 이 같은 성과는 딸기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스스로 힘을 모은 결과다.

◆정년 없는 네가 부러워

요즘 나 대표는 다른 일로 바쁘다. 퇴직을 앞둔 도시 친구들이 귀농상담을 해오기 때문이다. “정년 없는 나 대표가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정년이 60세이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정년을 앞둔 직장인들은 인생 2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런 친구에게 나 대표는 귀농상담사로 통한다.

딸기와 초콜릿의 만남 딸기퐁듀.(사진 사랑뜰농원 블로그)
농업에는 정년이 없다. 건강하면 언제까지도 일 할 수 있다.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따라 오는 8월부터 농어업인의 취업 가능 연한이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연장된다. 즉 농어업인의 정년이 70세 이상으로 연장된 것이다.

국보 제94호 청자참외모양병.(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젊은 시절 도시에서 잘 나가던 친구들이 이제는 농부 친구를 부러워한다. 인생역전이라 할 만하다. 농업도 엄연한 경영체라는 인식과 정년 없이 일 할 수 있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 대표도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소득과 재산적 측면에서도 결코 도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나 대표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농업은 전망이 밝은 직업이라면서 인생 2막으로 귀농을 적극 권장한다. 최근에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불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 동생도 지금 옆 농장에서 딸기를 재배한다. 만족도도 높다. 30년 농사꾼은 이제 귀농 전도사의 역할도 함께 한다.

▲농장명: 사랑뜰농원

▲농장주: 나영완·이수경

▲구입·체험문의: 010-9939-6371, 054-955-6371

▲블로그: https://blog.naver.com/lovegarden6371

▲소재지: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100-1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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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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