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노하우를 갖춘 농사 전문가||달고 아삭한 참외의 참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럼 이처럼 맛있는 참외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정인지와 김종서 등이 쓴 ‘고려사’에 참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을 볼 때 참외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외(瓜), 첨과(甛瓜), 참외(眞瓜), 왕과(王瓜), 띠외(土瓜), 쥐참외(野甛瓜) 등으로 불렸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국보 제94호 ‘청자참외모양병’이다. 고려 인종의 능인 장릉에서 발굴된 고려청자이다. 높이 22.8㎝로 참외 모양의 동체(중심부분)와 참외꽃 모양의 아가리, 치마 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있는 화병이다. 단정하고 세련된 형태로 예술성이 높다는 평을 받는다.
30년 동안 참외농사를 지어온 토종 농사꾼을 만났다. 고령에서 ‘사랑뜰농원’을 운영하는 나영완(53)·이수경(51)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참외 8천여㎡와 딸기 4천여㎡를 재배해 연간 2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30년 동안 참외를 재배했다. 5년 전부터 소득 안배를 위해 딸기도 재배한다.
◆새농민상에 빛나는 전문농부
나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3년간 섬유회사에 근무하다 농촌으로 들어왔다. 그때 23살이었다. 마을에 청년은 아무도 없었다. 농촌으로 들어오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젊은 사람이 왜 농촌으로 들어오느냐, 장가도 가기 어렵다”는 게 주변의 인사였다.
아버지 농사를 이어받아 30년이 됐다. 2천600여㎡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참외를 재배했다. 아침저녁으로 덮고 벗기는 볏짚 거적으로 보온해야 하기에 일손이 많이 들었다. 완전 수작업이어서 재배 면적 확대도 어려웠다.
◆달고 맛있는 참외 비결은 땅심
올해로 참외재배 경력만 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3번 바뀐 시간이었다. 참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은 짧았다. “땅이다.”
◆딸기에 대한 도전과 실패
5년 전에 참외를 줄이고 딸기재배를 시작했다. 농사가 직업이니 어느 작목이라도 자신이 있었다. 연동하우스를 짓고 본격적인 재배에 나섰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길도 많았으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품질이 좋다는 종묘상의 말만 믿고 일본 품종 모종을 구입해 심었다. 딸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희망도 자랐다. 그러나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달리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렸으나 기다리는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 쪼그리고 앉아 딸기를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드문드문 달리기 시작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자체 육묘기술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다음해도 같은 모종을 심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딸기로 뭉친 다산딸기조합
농민들이 뭉쳤다. 같은 마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7농가가 ‘다산딸기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조합을 구성하고 공동으로 홍보와 체험을 진행한다. 운영 형태가 색다르다. 조합 운영을 관리할 전문가를 채용해 운영한다. 일종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판매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판매 방식을 도입, 지난 4개월 동안 8천여 명이 다녀갔다. 이 같은 성과는 딸기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스스로 힘을 모은 결과다.
◆정년 없는 네가 부러워
요즘 나 대표는 다른 일로 바쁘다. 퇴직을 앞둔 도시 친구들이 귀농상담을 해오기 때문이다. “정년 없는 나 대표가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정년이 60세이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정년을 앞둔 직장인들은 인생 2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런 친구에게 나 대표는 귀농상담사로 통한다.
나 대표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농업은 전망이 밝은 직업이라면서 인생 2막으로 귀농을 적극 권장한다. 최근에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불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 동생도 지금 옆 농장에서 딸기를 재배한다. 만족도도 높다. 30년 농사꾼은 이제 귀농 전도사의 역할도 함께 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